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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인준 신부님_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3 조회수39 추천수2 반대(0) 신고

 

 

제1독서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

 

예언자들 중에 이사야의 성소 장면은 특이합니다. 하느님께서 성전에서
당신의 엄위한 모습을 예언자 앞에서 드러내시고 그에게 소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언자는 구약의 통념에서 하느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외칩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이사 6,5)

그러나 사랍들 중에 하나가 대답대신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예언자의
입에 대닙니다.

그리고 누구를 사람들에게 파견하셔야 하는 줄을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의논하십니다.

예 언자는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대답합니다.

다른 예언자들이나 판관들은 주님께 불림을 받으면 다 핑계를 대고
뒤로 빠지려고 하는데 이사야만 용기를 갖고 나서는 것입니다.

자신이 ‘입술이 더러운 사람’으로 부족함을 한탄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큰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변명, 합리화, 이것저것을 대는 핑계라는
모습을 훌훌 털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용기를 갖고 또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얼마나 바람직한 신앙인의 모습인가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반대를 받더라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병든이들을 고쳐주시고 마귀를 쫒아 내시는 주님께 한켠에서는 비난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귀의 두목인 베엘제벨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쫒아 낸다는 억울한 소리를 들으시지만
주님께서는 당당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6-27)

주님께서 곁들어 말씀하십니다. 육신을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까지도 주시고 거두시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새에서부터 자연의 모든 이치를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의지하며 현실적으로 겪는
아픔과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말씀해 주십니다.

한문에서 세상에 속한 속인에서 ‘속(俗)’자를 잘 들여다 보면 사람 인(人)변에
골자기 곡(谷)자를 씁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다시 말해 속인(俗人)은 앞을 막는
계곡에 갇혀 그것만 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선(神仙)이라는 말을 보면 재미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선이란 참다운 신앙인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동양사상에서는 도(道)가 통한 사람인데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仙)을 보면 사람 인(人)변에 ‘묏산(山)’를 씁니다.
이것을 풀어 보면 산에 오른 사람이라 할 수 있지요. 그것은 산 위에서는
자신이 걸어 온 계곡이며 길 그리고 세상을 다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가려 있는 권력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도 이 말씀을 받아 ‘눈에 보이는 것을 희망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세상의 조건들 앞에서 힘겨울 때가 있고 주눅이 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족하고 세상의 힘은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부족한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고 당신의 제자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자신의 부족함을 철저하게 깨달으면서도 하느님 앞에 용기를 갖고
나설 수 있었듯이 우리도 한없이 부족한 존재이지만 주님을 믿고 용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좋으신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우리에게 오늘도 기쁘게 살도록 초대하십시다.

“저를 보내십시오.”라는 예언자의 모범을 따라 오늘도 우리 모두가 긍정적이고
감사하는 날이 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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