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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찬선 신부님_여행자가 아니라 파견된 자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4 조회수41 추천수1 반대(0) 신고

배가본드(vagabond)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말로 여행자라고 번역되는 말인데 이것을 영영사전에서는

‘wandering aimlessly without ties to a place or community’라고 풀이합니다.
풀이하면 어떤 일정한 장소나 공동체에 매임 없이

그리고 아무 뚜렷한 목적 없이 떠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는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요즘 참으로 여행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좀 더 고상하게 성지 순례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곳에 매인 삶이 답답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저는 함부로 의심도 하고 비판도 합니다.

아무튼 여행이나 순례나 공통점은 어떤 곳에 매이지 않고,

머물던 곳을 떠나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의 아모스나 복음의 제자들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여행자나 순례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행자와 순례자가 자기 스스로 떠나는 것이라면

예언자와 사도들은 부르심 받고 파견받아 떠나는 것이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여행자와 순례자가 자기가 좋아서

그리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곧 자기가 끌리는 데로 간다면

예언자와 사도들은 가기 싫어도 가라고 하시니 가고,

가고 싶지 않은 곳도 가라고 하시니 가는 것이 다른 것이지요.

실로 저희 수도자와 선교사에게 관건은 파견의식입니다.

여기서 파견의식이란 파견 예절의 뜻이 아니라

나는 파견되는 존재라는 정체성 의식을 말함입니다.

내가 파견되고 안 되고는 파견자의 뜻이고,

어디로 파견되는 것도 파견의 뜻이며,

파견되지 않으면 있는 곳에 계속 있는 것도 파견자의 뜻입니다.

그런데 수도자건 신자들이건 이런 파견의식이 없어

파견자의 뜻을 생각지 않고 ‘셀프파견’을 하려 합니다.

옛날 수도자들은 선교사로 파견될 때

선교사가 될 생각이 없는데도 선교사가 되라고 하니 되고,

갈 곳도 자기 선택이 아니라 가라는 곳이, 갈 곳이 되었는데

지금은 내가 선교사가 되고 싶어서 되고

가고 싶은 곳이, 갈 곳이 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집니다.

여행자나 순례자와 예언자나 선교사의 차이는 여행 짐을 봐도 알 수 있지요.

요즘 여행자들은 웬 짐이 그리 많습니까? 짐이 짐스럽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속으로 비판합니다.

다른 것은 그렇게 짐스러워하면서 여행 짐은 하나도 짐스럽지 않은가 보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짐에 관한 규정을 파견 규정으로 내려 주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마라!

아무것도 너에게 짐이 되고 지장이 되지 않게 하라!

아무것도 네가 의존하는 필수품이 되지 않게 하라!

네가 오로지 지녀야 할 것 곧 짐은 주님뿐이다!

주님의 복음과 주님의 평화만 너의 짐이다!

주님의 파견 규정에는 가야 할 곳도 있습니다.

가야 할 곳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경치 좋은 곳 또는 명승지가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목적이 복음 선포이니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파견 규정에는 마무리 규정도 있습니다.

떠나갈 때 파견자의 뜻대로 파견되었듯

마칠 때도 파견자의 뜻대로 마쳐야 합니다.

더 있고 싶다고 하지 않음은 말할 것도 없고,

환영받지 못할 때 뒤끝이 작렬해서도 안 됩니다.

발의 먼지를 털고 깨끗이 떠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에는 그곳을 깨끗이 떠나는 뜻도 있지만

더 중요한 뜻은 새로운 곳으로 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도 그리고 어떤 사람도 애착하지 말고,

그저 하느님 뜻에 따라 있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라는 주님의 뜻 말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여행자가 아니라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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