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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요즘엔 왜 기적이 적게 일어날까?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4 조회수119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5주일

 

 

 

<요즘엔 왜 기적이 적게 일어날까?>

 

 

 

복음: 마르코 6,7-13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는 능력을 받고 파견 받습니다. 

병의 치유는 하느님만의 능력이고 거룩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치유의 기적을 좀처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그냥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먼저 하느님을 믿지 않더라도 세상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하는 예를 살펴보며 우리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한 중년 남성이 자전거를 탄 10대 소년이 차에 깔린 것을 보고는 얼른 달려가 차를 들어 올렸습니다. 소년은 극심한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아저씨, 조금만 더 높이요, 조금만 더 높이요!”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중년 남성은 차를 20센티미터 이상 들어 올렸고 그 소년을 친 운전사가 소년을 빼냈습니다. 그는 “사고 현장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어요. 그 소년에 제 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거였죠.”라고 말했습니다. 중년 남성의 이름은 톰 보일이고, 이 일은 2006년 여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은 뜻밖에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2005년 여름 영국 선더랜드에서 친구와 함께 캠핑하던 23세 카일라 스미스는 차를 나무에 들이박는 사고를 당해 차가 뒤집혔습니다. 신장 165센티미터의 가냘픈 스미스는 자신도 등뼈 두 마디가 부러지고 머리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었지만, 자신과 함께 타고 있던 친구를 빼내기 위해 차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무조건 차를 들어 올리지 않으면 친구의 다리는 못 쓰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 팔을 운전석 창문으로 넣어 차 지붕을 밀어 올렸죠.” 

    스미스는 BBC 등 영국 언론에 나와 자신의 몸무게보다 20배가 더 나가는 무게를 들어 올릴 당시 자신은 차 무게에 관한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출처: ‘마음을 비우면 얻어지는 것들’, 김상운]

 

 

    이런 기적과 같은 힘을 발휘할 때의 특징은 ‘사랑’은 있는데 더는 줄 것이 없는 상태라는 데 있습니다. 이를 ‘가난’, 혹은 ‘청빈’이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이르셨습니다. 억지 가난이 아닌 다 내어주어 더는 가지지 못한 상태가 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당신 영이 활동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일이지만, 2017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겠다며 후원금을 모은 뒤 수만 명으로부터 12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아 외제차를 사고 요트 파티를 하는 등 호화 생활을 즐기는 데 쓴 일당이 잡힌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도 받은 돈 일부를 후원하기는 하였습니다. 사진은 찍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알고 그들에게 기부할 사람이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병원에 갈 돈 정도는 줄 수 있으면서 그것은 아끼고 주님께 치유의 기도를 하면 들어주실까요? 하느님은 조롱당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 교회에 기적이 없다면 아직은 교회가 신자들이나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이 남아있기 때문일 수 있겠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교황이 교황청 발코니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때 온 유럽 전역에서 걷은 돈들이 수레에 실려 교황청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자랑스럽게 “저것을 보아라. 이제 베드로가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사도 3,6)라고 하던 때는 지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도 “맞습니다. 교황님, 이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라고 하던 때도 지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루 리마의 성 마르티노 수사는 흑인입니다. 수도회의 재정 사정이 나빠지자 그는 자기를 노예로 팔아 수도회의 재정을 채우라고 합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줄 때 빵이 무한정 늘어나는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이런 분들의 시복·시성 조사 때 꼭 하는 게 기적 심사입니다. 성인의 생전에 일으킨 기적이 아닙니다. 돌아가신 뒤에 거룩함의 표징으로 일어나는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가난은 곧 죽음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성인이 더는 줄 것이 없이 되었을 때 분명 그 성인을 통해 당신께서 더 내어주십니다. 이러한 표징들이 많아야 초대 교회처럼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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