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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6 조회수274 추천수4 반대(0)

연령회에서 11월 위령성월을 죽음에 대한 교육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 죽음이란?’이라는 주제는 본당신부님이 하는 거라고 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죽음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지 않았습니다. 강의 부탁을 받으면서 신앙인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말에 죽음과 관련된 단어가 있습니다. 자주 듣는 말이 돌아가셨습니다.’입니다. 이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여행을 가듯이, 죽음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운명하셨습니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관계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말에 죽음은 어딘가로 떠나는 여행과도 같고, 이 세상과의 관계가 끝났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딘가로 떠났다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갔다 오라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 제사를 교회는 우상숭배라고 여겼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 복자는 제사를 거부했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제사를 조상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설과 추석에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예식을 마련하였습니다. ‘연도는 죽은 이를 위한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연도는 고인의 유족들에게는 깊은 위로가 됩니다. 연도는 이제 하느님의 품으로 가는 이를 위해 성인들의 통공을 바라는 기도입니다.

 

구약성서 마카베오서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엘아자르의 이야기입니다. 마카베오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엘아자르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일곱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마카베오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 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이 사악한 인간,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우리 형제들은 잠시 고통을 겪고 나서 하느님의 계약 덕분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었소. 그러나 당신은 주님의 심판을 받아 그 교만에 마땅한 벌을 짊어질 것이오.” 일곱 형제와 어머니는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위령기도 감사송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신앙인들에게 죽음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어야 했던 사람들은 깊은 위로를 받습니다.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해서 마르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다시 일어섰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섰습니다.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일어섰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근본입니다. 부활은 죽음이후의 삶이 아닙니다. 부활은 지금 이곳에서 나의 삶이 변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지금 이곳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십자가를 포기한다면 부활은 허황된 꿈일 뿐입니다.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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