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송영진 신부님_<성당은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7 조회수68 추천수3 반대(0) 신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1) 이 말씀은 루카복음에 있는 ‘희년선포 말씀’에 연결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기쁨’과 ‘해방’과

 

‘자유’를 주려고 오신 분입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입니다.

 

그 구원에서 배제되는 사람도 없고, 그 구원이

 

필요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따라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과

 

“무거운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여기서 ‘안식’이라는 말은, 하느님 나라의 구원, 생명, 평화,

 

행복, 기쁨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이 나에게는 필요 없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논쟁을 벌였던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1ㄴ-32).”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요한 8,3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한 8,34ㄴ-3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머무르면, 즉 당신을 믿고

 

회개하고 당신의 가르침대로 살면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자기들은 자유를 잃은 적이 없다고,

 

자기들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감방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열쇠를 주어도, 이곳은 감방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면, 예수님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39-41).”

 

<보아야 할 것을 보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을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이 구원받기를 거부해서 못 받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주시는 해방과 평화와 안식을 얻어 누리려면,

 

지금 자기가 무거운 짐과 멍에의 억압 속에 있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무거운 짐도 없고 멍에도 없다. 나는 자유롭게

 

잘 살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 것입니다.

 

그러다가 심판 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기가 온갖 죄와

 

죽음이라는 짐과 멍에의 억압 속에서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해방과 평화와 안식을

 

외면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임종 순간에 그것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에라도 회개하고 신앙을 받아들이고 임종을

 

맞이한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냥 후회만 하면서

 

생을 마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신앙인은 인생의 모든 고통에서, 또 죄와 죽음이라는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희망하고, 그 해방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예수님만이 참 안식과 해방과 평화를

 

주신다는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

 

 

 

4) 예수님 말씀에서 ‘내 멍에’는 반어법적 표현입니다.

 

멍에 자체가 하나도 없는 것이 진짜 해방이고 안식입니다.

 

따라서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라는 말씀은,

 

“나를 믿고 나의 계명과 가르침대로 살면

 

온갖 멍에와 짐에서 벗어날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라는 말씀은,

 

“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너희의 멍에를 벗겨서 편안함과

 

가벼움을 주는(참된 안식을 주는) 열쇠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계명들과 가르침들은 결코 멍에가 아닙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무거운 멍에를 당신의

 

가벼운 멍에로 바꿔 주시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겁든지 가볍든지 멍에는 멍에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멍에와 짐을 완전히 없애 주시는 분입니다.

 

<성당은 주님과 함께 안식을 누리는 곳, 즉 안식처입니다.

 

만일에 신자들이 성당에 와서 안식을 누리기는커녕

 

여러 가지 부담만 잔뜩 얻는다면,

 

그것은 일차적으로 사목자들의 잘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