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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7.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1 조회수144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4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일

자기계발서를 보면,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

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아마 이렇게 힘차게 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당당하게

사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좋은 것만 하려고 하고,

자기 싫은 것은 죽어도

싫다면서 하지 않지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기 생각만 밀고 나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여쭙겠습니다.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할까요?”

당당하지만 무례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당함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상처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당당함에 자기 욕심과

이기심이 담겨 있다면 이것은

지극히 무례한 것으로 사람들과

함께하기 힘들어집니다.

저 역시 이런 무례한 사람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아서,
거리감을 둘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소심하게 살기를 원하실까요?

우리를 소중하게 창조하신 것만을

보더라도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당신을 따라오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지켜주는 사람이 없으면

계속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당당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단, 여기에 조건이 붙습니다.

무례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랑을 강조하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춰서

당당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사랑해야 할 때,

움츠러들지 않고 또 숨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당당함만을 드러내는

사람은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기 힘듭니다.

자기만 사랑하고 있기에, 하느님 앞에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나서

숨었던 것처럼, 하느님 앞에

숨으려고만 하기 때문입니다.

당당하면서도 무례하지 않은,

진정으로 주님의 사랑을 배워서

세상에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진정으로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 안에서만이 하느님 나라의

커다란 희망이 있기에 그 희망을

바라보면서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 같은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참 목자로 다가오십니다.

제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유다인과 이민족 사이에

놓여 있던 분열과 적개심의

장벽을 허물어뜨려 하나로

만드신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계신 주님과 함께

하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을 간직하기에

또한 무례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막스 뮐러)

사진설명: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7대교회 순례와 성 요한 성당에서의

미사가 있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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