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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환대의 사랑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9 조회수90 추천수8 반대(0) 신고

 

“환대의 사람, 환대의 집”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시편34,2)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유익합니다.

“타인이 나의 거울이 되듯 나 또한 타안의 거울이 된다. ‘나는 얼마나 맑고 깨끗한 거울인가?”<다산>

날마다 말씀의 거울에 비춰보면서 사랑을 새로이 할수록 맑고 깨끗한 마음의 거울일 것입니다. 특히 오늘은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삼남매의 환대의 사랑, 환대의 거울에 우리 자신을 비춰볼 수 있겠습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좋은 점은 배워 본받고, 좋지 않은 점은 나 자신을 바로 잡는 거울로 삼는다”<논어>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제 자신을 비춰보고 배우는 공동체 형제들의 거울입니다. 사실 만나는 모든 이들 하나하나가 저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매일 주님의 거울인 미사얼굴에 자신을 비춰보는 우리들입니다.

 

또 어제 과학잡지 뉴톤 7월호에서 “지능이란 무엇인가?”에서 읽은 저명한 학자의 인텨뷰 결론을 꼭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실패에는 좋은실패와 나쁜실패가 있다. 나쁜실패는 누군가가 이미 경험한 실패이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나쁜실패를 할 확률이 낮아진다. 그런 다음 경험하는 실패는 좋은 실패다. 결국은 좋은실패가 중요하다.”

매사 모두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수행생활에 충실할수록 나쁜실패는 줄어들고 있다하면 좋은실패들일 것이며 이는 내적성장과 성숙에 좋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제 주일 삼종기도후 교황님의 강론 주제가 멋졌습니다. “음미하십시오, 날마다 하느님의 기적들을!(Savour, God’s everday miracles!”, 하루하루 날마다 하느님의 기적을 음미하며, 맛보며 사는 삶이 참 멋집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오늘 화답송 후렴도 잘 어울립니다. 우선 그 시작이 매일 미사때 주님을 맛보는 것입니다. 주님 맛으로 살아가는 믿는 이들입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입니다. 세남매의 이름을 따서 저희 요셉 수도원 피정집 하나는 마리아의 집이라 부르고 하나는 라자로의 집이라 부르며 봉사자 집은 마르타의 집이라 부릅니다. 오늘 세남매를 동시에 기념일로 지내기 올해로 4번째입니다. 그전에는 이 날은 마르타의 기념일로만 지냈습니다.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각별한 배려의 사랑을, 결단을 깨닫습니다. 2016년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축일로 격상시켰고, 어제는 제4회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지냈는데 역시 현임 교황님의 배려의 결단임을 봅니다. 당시 교황님의 가르침이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서 예수님은 순례자요 손님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여행중인 주님을 환대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대접했습니다. 그러나 두 대조되는 태도로 봐서는 안되고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깊은 일치와 조화에서 체득되는 태도로 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봉사와 사랑의 활동은 주된 원천에서 결코 떼어낼수 없습니다. 주된 원천이란 주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형제,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향해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끌지 않는 관상이라면 무익하고 불완전합니다.”

 

교황님의 환대, 그리고 관상과 활동에 대한 명쾌한 설명입니다. 환대의 사랑은 관상과 활동으로 표현되는 상호보완의 관계요 환대의 우선 순위는 말씀의 경청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가 그러하듯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간의 관계도 두 성인처럼 상호보완관계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관상과 활동,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깨달음을 노래한 ‘산山과 강江’이란 제 자작시가 있습니다. 역시이 시는 '성 베네딕도회 프란치스코 수도사제'인 저의 신원을 보여줍니다.

 

“밖으로는 한결같은 정주의 산山,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한결같이 맑게 흐르는 강江, 성 프란치스코”

 

전번 방문했던 한의원 아들이 둘있는데 큰 아들은 산山, 작은 아들은 강江이라 하기에 기막힌 이름이란 격찬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환대하는 미사의 구조도 말씀전례에 이은 성찬전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르타의 주님 환대가 적극적이요 빛을 발합니다. 마르타 덕분에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참 기막힌 복음의 진리를 배웁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으로 평생 화두로 삼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진리를 설파하신후, 주님은 “너는 이것을 믿느냐?”물으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마르타는 참으로 멋진 신앙고백으로 주님을 환대함으로 주님을 기쁘게 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영원히 우리의 주님 고백으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환대의 우선순위는 말씀의 경청이자 신앙고백임을 깨닫습니다.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 삼남매는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이들 삼남매가 살던 베타니아의 집은 주님이 피곤할 때 마다 수시로 마음 편히 머물렀던 ‘환대의 집’ 같습니다. 환대의 사랑에 환대의 사람들인 삼남매요, 환대의 집인 베타니아 집이요 이들을 닮은 우리 성베네딕회 요셉수도원입니다. 요셉 수도원뿐 아니라 정주의 삶을 살아가는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에게 필수 덕목이 환대입니다. 정주와 환대의 영성은 한쌍을 이룹니다. 규칙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합당한 공경을 드러낼 것이며 특히 신앙의 가족들과 순례자들에게 그러할 것이다.”(성규53,1-2)

 

그러니 수도원을 방문하는 신앙의 가족들과 순례자들,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의 사랑, 환대의 영성은 베네딕도회 영성을 대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환대의 사랑, 환대의 영성을 살아가는 환대의 사람들인 수도자들이요, 위로와 치유가 일어나는 환대의 집, 주님의 집, 평화의 집인 수도원은 흡사 세상 광야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제1독서 요한1서는 흡사 ‘사랑의 찬가’같습니다. 짧은 말씀 안에 무려 사랑이란 말마디가 18회 나옵니다. 새삼 사랑밖엔 길이, 답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우리의 존재이유이며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사랑예찬의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기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듯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의 요한 사도야 말로 주님을 가장 닮은 '사랑의 대가'이자 '사랑의 달인'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환대의 사랑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환대의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환대하시며, 우리 역시 마음을 활짝 열어 말씀과 성체로 오시는 주님을 환대의 사랑으로 맞이하는, 주님의 환대와 우리의 환대가 만나는 축복의 시간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시편34,6).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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