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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7.2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9 조회수121 추천수5 반대(1) 신고

 

2024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어느 형제님은 반드시 회사에

출근한 뒤에 회사 화장실에 들러

대변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 데요.

“나는 똥을 싸면서 돈을 번다.”

틀린 말이 아니죠?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산다면 정말로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겠다 싶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회사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박봉인데도 늘 즐겁게 생활하십니다.

사실 세상은 불공평해 보입니다.

아니 분명히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그 형평성은 자기 마음에서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누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보상을 받으면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이 세상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하나를 베풀면,

상대방도 하나를 줘야

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10개를 줘도

하나도 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큰 이득을 얻었다면서

좋아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오히려 주는 사람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너무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 삶은

길게 잡아봐야 100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 나라는 영원합니다.

그 나라에 보물을 쌓는 것은

이 세상 안에서 자기가 베푼 것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사랑이 하느님 나라에 보물로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입니다.

100년 동안 사랑만 베풀었다고

하느님께서 바보같이 살았다고 하실까요?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나라에 가야 진정한 공평함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마르타와 예수님의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마르타는 라자로의 누이며

마리아의 자매이지요.

그리고 그들의 집은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에 지치셨을 때

찾아오셔서 쉴 수 있는 곳이었지요.

그만큼 예수님과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과

같은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오빠 라자로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예수님만 그 자리에 계셨더라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을 알고 있었지요.

다른 사람은 다 살리면서, 사랑하는

오빠에게 무관심했던 예수님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르타는 자기의

신앙을 강하게 고백합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이라는

믿음을 표현하지요. 그 결과 오빠를

살리시는 주님의 기적을 직접 체험합니다.

불공평해 보이는 세상의 모든 일에,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주님의 섭리를

그때 비로소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소통은 이해의 과정이며,

이해는 인간관계의 밑바탕입니다.

(피터 센게)

사진설명: 라자로의 부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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