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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는 이것 하나로 결정된다.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30 조회수65 추천수1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는 이것 하나로 결정된다>

 

 

 

복음: 마태오 13,36-43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은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지막 때에 밀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늘에서 별처럼 빛날 것이지만, 가라지는 불붙는 지옥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안타깝지만, 진리입니다. 지옥이 없다느니, 상태를 말한다느니 하며 진리를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지옥에 어떻게 가지 않아야 하는지가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의 힌트가 있습니다. 가라지는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왜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을 죄짓게 할까요? 그들을 이용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입니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란 소설은 진정한 인간의 가치는 인간이 평가하는 기준과는 다를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프랑스의 루앙시를 프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을 때 몇 명의 귀족, 정치인, 부자, 종교인이 함께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중에 비곗덩어리로 불리는 창녀 한 명도 끼어 있었는데 조금 뚱뚱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눈을 가졌고 자신이 가진 음식을 일행과 나눌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도 지녔습니다. 무엇보다 프러시아의 시민이 될 수는 없다는 애국자 중 하나였습니다. 

 

 

    일행은 토트 시에 잠깐 머물게 됐는데 그 젊은 창녀에게 눈독을 들인 프러시아군 장교가 그녀와 잠자리하지 않으면 그들을 통과시켜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러나 프러시아가 싫어 탈출한 애국자가 프러시아군 장교와 잠자리할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여관방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일행도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창녀 주제에. 한 번 자 주면 되지.’

 

 

    그래서 그녀가 장교의 말을 들어줄 수 있도록 설득하였습니다. 심지어 함께 탈출하는 수녀들까지도 그녀를 설득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위대한 행동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창녀는 장교와 하룻밤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행은 창녀를 벌레 보듯 합니다. 음식도 챙겨올 시간이 없었던 그녀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애국심에 가득 차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혁명가를 크게 부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장 밀과 같았던 이들이 가라지로 드러났고 비곗덩어리로 불리며 쭉정이인 줄 알았던 창녀만이 밀로 드러났습니다. 창녀는 다른 이들을 이용하지 않았고 죄짓게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녀를 죄짓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창녀를 죄짓게 한 이유는 자기들 이익 때문입니다. 무슨 이익을 얻었을까요? 자신들은 몸 파는 사람이 아니라는 교만함과 육체의 자유와 자신들이 가진 소유를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신이 되려고 하는 것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진짜 신이 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죄가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 아닌, 하느님 없이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거룩한 상태에 있게 하시고, 영광 안에서 충만히 ‘신화’(神化)하기로 정하셨다. 그러나 악마의 유혹으로 인간은 ‘하느님 없이, 하느님보다 앞서서,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서’ ‘하느님처럼 되기를’ 원하였다.”(CCC 398)

 

 

    하느님께서 주시는 살과 피, 곧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는 신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 없이 신이 되는 방법은 타인을 죄에 빠뜨리며 이용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돈을 통해서 내가 주님이 되고, 육욕을 통해 내가 창조자가 되며, 교만을 통해 내가 심판자가 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 소설 ‘고양이’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개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은 신이 분명하다.

[고양이의 생각]

인간은 나를 먹여 주고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인간에게 나는 신이 분명하다.

 

 

    개와 고양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개는 주인을 통해 신이 되려 하고 고양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신이 되려 합니다. 누구나 신이 되려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피조물로서 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거나, 아니면 나를 본래 신으로 여겨 신 없이 신이 되려는 방향 두 개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름도 넣어졌고 액셀러레이터도 밟혔습니다. 이제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밀이 될 것인지, 가라지가 될 것인지. 내가 신이 되려고 하거나, 신을 통해 신이 되려고 하거나! ‘착한 뜻’은 결국 나 스스로가 아니라 내가 ‘신을 통하여 신이 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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