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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1 조회수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마태 13,54-58).”

 

 

 

1)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낮춤’을 이렇게 찬미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예수님께서 시골 나자렛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라는

 

모습을 취하신 것은, 또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목수 일을

 

하신 것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낮춤’입니다.

 

주님께서 바오로 사도에게 하신 다음 말씀을

 

그 ‘낮춤’의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ㄴ).”

 

코린토 1서에 있는 다음 말들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4-25).”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코린 1,27-31).”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은, ‘가장 낮은

 

사람’도 구원하기 위해서인데, 그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려고, ‘나에게’ 오신 분입니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지위, 직책, 직무, 학위,

 

명예, 재산 따위는,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원래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려고 오신 주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학위나 직책 같은 것을 내세우면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교만이고,

 

허영인데, 그 교만과 허영심도 죄가 되는 일입니다.

 

 

 

2) 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활동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5-36).”

 

‘나자렛’은 예수님께서 다니신 ‘모든 고을과 마을’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나자렛 사람들도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을

 

가엾게 여기셨기 때문에, 나자렛에 가셨습니다.

 

고향이라서 특별히 찾아가신 것이 아니라...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향이라는 점 때문에

 

나자렛에 가신 일을 특별한 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할 것이라고,

 

또는 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고을보다는 좀 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자렛 사람들이 환영하거나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보고,

 

즉 적대감과 반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

 

아마도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나자렛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나자렛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해석하면,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이방인들은 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데, 하느님을 알고 있고 믿고 있다는 너희는 왜

 

나의 복음을 믿지 않느냐?” 라고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면, “고향과 집안이라는

 

이유만으로 존경과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3) 루카복음을 보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죽이려고 했습니다(루카 4,29).

 

그 일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에게는, 그 일이 장차 자신들이

 

겪게 될 일에 대한 ‘일종의 예방주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파견하실 때 다음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마태 10,24-25)”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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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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