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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헛일’은 없습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3 조회수53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마태 14,1-12).”

 

 

 

1) 여기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라는 말은, 헤로데가 하느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의 여론만 두려워했다는 뜻인데, 그가 백성의 여론을

 

두려워한 것은 권력을 잃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헤로데를 반대해서 반란이나 폭동을 일으킨다면,

 

로마 황제는 헤로데에게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사실 헤로데는 로마 황제가 임명한 영주였고,

 

황제의 눈에서 벗어나면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실제로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그렇다면 헤로데가 진짜로 두려워한 것은

 

로마 황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 ‘민심은 천심이다.’ 라는 말을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당시의 백성들은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의 예언자로 생각했고, 헤로데를 싫어하긴 했지만,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해서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백성들도 하느님보다는 헤로데의 권력을 더 무서워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헤로데는 백성의 여론에 특별한 움직임이 없자 자신감을

 

얻었는지 예수님도 죽이려고 했습니다(루카 13,31).>

 

그래서 ‘민신은 천심이다.’ 라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2) 헤로데가 하느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백성의 여론만

 

두려워한 모습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28-31).”

 

헤로데는 세속의 권력으로 다른 사람의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였고, 인간의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하느님을, 또 자기 자신의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자입니다.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라는 말씀을, 헤로데와

 

세례자 요한의 경우에 적용하면, 헤로데나 로마 황제들 같은

 

어리석은 독재자들은 하느님의 심판대에서는 ‘참새’보다 더

 

하찮은 존재이고,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나 로마 황제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다.” 라는

 

말씀도 헤로데와 세례자 요한의 경우에 적용하면,

 

하느님께서는 헤로데나 로마 황제들의 온갖 악행을 세세하게

 

알고 계신다는 뜻이기도 하고, 요한이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겪은 고난들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쏟아집니다.

 

먼저 유다인이 그리고 그리스인까지,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환난과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2,6-11).”

 

 

 

3) 세례자 요한의 활동에 대해서, “그의 활동은 성공일까,

 

실패일까?”(“하느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일을 시키신 것은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예언자일까?

 

아니면 임무 수행에 실패한 예언자일까?”>

 

믿음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은 실패로,

 

또 그에게 일을 시키신 하느님의 뜻도 실패로 보일 것이고,

 

세례자 요한은 임무 수행에 실패한 예언자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예언자이고, 그의 활동은 성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사람들을 모두 회개시키라는 임무를

 

주신 것이 아니라, 회개를 선포하라는 임무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회개 선포를 듣고서도 회개하지 않은 것은,

 

그 사람들 자신들 탓이지 세례자 요한 탓이 아닙니다.

 

이사야서의 다음 말씀을 요한의 활동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0-11).”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헛일’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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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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