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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인간은 각자의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굶주리고 목마르다.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3 조회수7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8주일 

 

 

 

<인간은 각자의 이것을 발견하기까지 굶주리고 목마르다> 

 

 

 

 복음: 요한 6,24-35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오늘 복음은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예수님께서 ‘성체’라는 주제로 이끄시는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내어주셔 교회를 먹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너지가 떨어져 지쳐감을 의미합니다. 언제 사람이 지칠까요? 불안할 때입니다. 안 좋은 감정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차피 죽어야만 하는 인간의 처지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만약 이와 같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다면 사람이 지치지 않을까요?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 죽음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더 큰 공포를 피하기 위한 피신처로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정받지 못함’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더 많은 인정을 받았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의 그림을 사주지 않고 더는 작가로서 좋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그들은 자신들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전 KBS 아나운서인 이혜성 씨는 똑똑하고 예쁘면서도 ‘인정중독’에 빠져있었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녀는 공부를 잘해서 세상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리 인정을 받아도 배가 고파서 폭식증에 시달렸습니다. 먹으면 멈출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마음, 이것이 배고픔이고 목마름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부모의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인정받음입니다. 우리는 커다란 진주를 들고 시장에서 그것을 팔려고 다니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그렇게 귀한 물건을 들고 다닐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아이에게 그 진주를 준 부모만이 그 진주의 가치를 압니다. 우리 각자는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라는 진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를 창조하신 분에게 봉헌한다는 말은 그분만이 그것을 5천 명을 먹이실 만큼의 가치로 만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빅터 프랭클의 ‘로고 테라피’, 곧 의미 치료를 한국에 소개한 책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의 공동 저자 박상미 교수는 24세 때 수돗물이 얼 정도로 단열이 안 되는 옥탑방에서 인생을 끝내려 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왔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남자친구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와 몰래 사귀고 있었으며 가난은 그녀를 더는 버티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이틀 동안 잠들어 있다가 깼을 때 그녀는 극심한 고통과 함께 자기 죽은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죽기를 원했던 그녀는 “살려주세요!”를 연발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다시 몸속으로 돌아왔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삶이 주어진 은총이라고 믿으니 그 삶을 주신 분이 왜 자신을 창조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결국 그녀는 자신처럼 심리적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의미를 찾아주는 일을 하기 위해 공부하였고 그것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당신 살과 피는 내 빵과 물고기를 바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을 창조자로 믿고 그분이 나를 창조하신 뜻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저도 저 자신을 바치는 것을 아까워하며 불만에 싸여있을 때 성체에서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음성을 들었고 그제야 나의 죄를 깊이 뉘우치며 “제가 무엇을 해 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나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을 때 더는 신학교 생활이 지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이유는 나를 바쳐 목숨을 걸고 수행할 사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찾지 못한 이유는 나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 살과 피를 내어줄 존재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가 바로 아이가 부모를 만나듯이 우리가 당신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알려주는 창조자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양식을 통해 우리가 할 일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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