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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착한 목자 예수님처럼!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5 조회수76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삽시다”

 

 

“주님, 

 저를 거짓의 길에서 멀리하시고,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시편119,29)

 

일기쓰듯 쓰는 강론입니다. 새벽 뉴스를 확인하니, “사상 최악 폭염, 2018년 이후 첫 40도...열흘은 폭염”, 기후위기가 현실화되는 불길한 느낌입니다. “평화의 하느님 말씀을 억누르지 마라. 전쟁은 패배다.” 교황님의 어제 삼종기도후 강론시 말씀입니다. 전쟁은 누구에게나 패배라는 것입니다. 평화의 하느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전쟁입니다. 어제 읽은 삶의 지혜를 나누고 싶습니다. 

 

“‘불교에서 관觀은 지혜로 경계를 비추어본다는 의미이다. 관심觀心은 마음을 그리 보며 바르게 살핀다는 의미가 되겠지. 앞으로 세상을 잘 관하여 길 잃지 말고 인연이 닿거든 또 보자.’ 주지 스님의 편지에 착안한 작가는 관병觀病이라는 단어를 발굴해 병을 헤아리고, 살피며, 관계하는 대상이라고 정의한다. 투병鬪病, 치병治病도 아닌 반려병伴侶病이랄까?”

 

이런 지혜와 일맥상통하는 ‘놀다’라는 시입니다.

“괴로움을 견디느라 괴로움과 놀고

 슬픔을 견디느라 슬픔과 놀고

 그러다가

 노는 것도 싫어지면

 싫증하고 놀고....”<정현종 ‘놀다’시 전문>

 

어느 시인이 책상위에 붙여놓고 자신을 경계했다는 다음 대목의 글도 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서 책만 읽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우라. 학자도 땀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며, 다양한 일들을 경험해봐야 한다. 노동은 책 읽는 것 못지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신의 글 속에서 쓸데없는 잡담과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든 과일이든 스스로 예쁨을 경계해야 한다”

 

다산 옛 어른이 말씀도 마음에 새겨집니다.

“한 갑자의 공부를 두 단어로 정리하자면 바로 ‘마음’과 ‘일상’이다.”

모든 공부를 귀결하는 말마디가 ‘마음’과 ‘일상’입니다. ‘마음관리’와 ‘일상’을 충실히 살아냄이 참으로 중요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참 예언자 예레미야와 거짓 예언자 하난야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리자 비로소 말문을 여는 하느님의 사람, 예레미야입니다.

“하난야, 잘 들으시오. 주님께서 보내시지 않으셨는데도, 당신은 이 백성을 거짓에 의지하게 하였소. 그러므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참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용기의 예언자 예레미야입니다. 얼마나 주님과 깊은 소통의 일치관계에 있는 기도의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예레미야와 대칭구조에 있는 오늘 복음의 주인공 착한목자 예수님입니다. 예레미야의 긍정적 덕목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착한목자 예수님은 말그대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이며, 그의 덕목은 기도, 자비, 지혜, 용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순교후에 계속되는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예수님은 깊은 관상적 휴식의 기도를 위해 외딴곳을 찾습니다. 삶이 복잡하고 힘들수록 외딴곳의 쉼터와 샘터, 배움터와 기도터의 마련은 필수입니다. 저에게는 이른 새벽마다 강론을 쓰는 집무실이 외딴곳입니다. 예수님이 한결같이 진인사대천명의 삶을 살 수 있게 한 것도 외딴곳에서의 아버지와의 깊은 내적일치의 기도 덕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외딴곳의 광야에 도착했을 때 미리 대기하며 기다리고 있는 군중에 대한 예수님의 처신에서 착한목자로서 그분의 자비와 분별의 지혜가 빛을 발합니다. 존재하는 것은 나타나는 법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의 존재가 다음 대목에서 투명하게 드러납니다. 언행은 정직하여 속일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 가운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주눅들지 않으시고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신 자비와 지혜의 착한목자 예수님입니다. 고치심에 이어 군중을 먹이심으로 구체적 사랑이 표현됩니다.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명령하십니다.

“그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진 것 전부인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 놓아 나눴을 때, 즉시 이어지는 주님의 봉헌의 기도입니다. 군중을 풀밭에 자리 잡게 명하신후 진인사대천명 마음으로 봉헌기도를 바칩니다. 마치 광야여정중의 오아시스 미사를 상징하는듯 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눠주었다.’

 

그대로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이요 이런 절박한 자세로 미사를 봉헌해야 함을 배웁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키고 군중들을 감동시킨 제자들의 나눔이요 예수님의 봉헌기도에 마침내 모두가 배불리 먹은 기적입니다. 아마도 군중은 가진 것을 다 자발적으로 비워 나눴을 것이니 차고 넘치는 기적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기적, 나눔의 기적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의 기적입니다. 

 

날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광야 인생 여정중 사랑의 기적, 나눔의 기적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인생이 아닌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을 닮아 기도와 회개, 겸손과 온유, 자비와 지혜, 진실과 용기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 말씀에 희망을 두오니,

 진리의 말씀을 제 입에서 결코 거두지 마소서.”(시편119,43).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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