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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은총만으로’와 ‘성경만으로’가 서로 모순되는 이유
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6 조회수85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은총만으로’와 ‘성경만으로’가 서로 모순되는 이유>

 

 

 

복음: 마르코 9,2-10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타볼산에서 변모하십니다. 주님의 변하신 모습을 보는 것은 은총입니다.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멈추면 큰일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은총만이 아닌 말씀이 필요함을 아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정받는 것에만 목을 매면 그 기쁨에만 머물러있게 됩니다. 내가 인정받기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은혜를 잃어버립니다. 빈센트 반 고흐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자살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나의 가치는 내 행위로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란 그리스도를 닮는 행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려면 그분을 마치 ‘거울’처럼 보아야 합니다. ‘금쪽이’에 나온 한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다 말썽부리던 자기 모습을 버리고 착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은총만을 바라는 이상한 상태가 됩니다. 이것을 ‘은총중독’이라고 불러도 될 것입니다. 

 

 

    은총중독은 ‘말씀 빈곤’으로 갑니다. 말씀 묵상은 하지 않고 기도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례가 많습니다. 미사 때 강론은 무시하고 성체만 영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얀세니즘은 17세기에 등장했습니다. 네덜란드 신학자이자 이프르(Ypres)의 주교인 코르넬리우스 얀센(Cornelius Jansen)의 신학적인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얀센주의는 원죄, 인간의 타락, 신성한 은혜의 필요성, 예정론을 강조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완전히 부패했으며 선택된 소수만이 은혜와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종교적 실천에 대해 매우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목적이 오직 즐거움(영적 즐거움 포함)이라면 그런 행위는 모두 죄가 됩니다. 얀세니즘이 엄격해서 이단이 아닙니다. 은총만을 강조하니까 자연히 예정설을 주장하게 되고 말씀의 역할이 약화하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제10권 제33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내가 성가의 말씀(가사)보다는 목소리에 더욱 감화될 때, 나는 벌받을 죄를 지은 것이고, 그리하여 나는 차라리 음악을 듣지 아니하였음을 고백하나이다.” 

 

 

    이와 비슷한 ‘정적주의’도 있습니다. 은총에서 오는 마음의 평화를 깨지 않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정적주의는 17세기에 발생했으며 스페인 신부 미구엘 데 몰리노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정적주의가 왜 이단일까요? 말씀의 실천 동안엔 마치 운전할 때 기름을 줄어드는 것처럼 은총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기름을 채웠으면 운전을 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말씀을 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때 은총이 줄어들고 마음의 평화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은총과 말씀의 균형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영성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수도원을 개혁하는 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기도에서 얻어진 에너지를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고 거기에 쏟아부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은 아드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듣도록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성가는 노래 부르는 이의 목소리나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가사를 음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개신교처럼 ‘말씀만으로’라고 한다면 이는 말씀의 씨를 키우는데 태양과 비는 소용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한 ‘은총만으로’라고 한다면 씨를 뿌리는 일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어떤 것만으로 구원이 된다고 말할 때 서로 모순을 보일 수 있습니다. 

 

 

    저는 하.사.시.를 읽으며 매일의 나의 방향을 잡습니다. 방향은 잡혀있지만, 도로를 벗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하.사.시.입니다. 그렇다고 성체조배를 하지 않을까요? 성체조배와 말씀 읽기는 병행되어야 합니다. 차를 위해선 기름도 필요하고 운전 능력도 필요합니다. 영혼이 은총이라면 몸은 말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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