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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7 조회수47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마태 15,21-28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보통 남의 말을 잘 믿는 사람은 ‘자아’가 강하지 않은 편입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고, 남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억지를 부리지 않지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을 줄 알고 그가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압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귀가 얇다’는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그런 평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편입니다. 반면 남의 말을 잘 안 믿는 사람은 ‘자아’가 강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기에 남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보다 자기가 말하는 시간이 더 많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잘 인정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고집이 세다’는 핀잔을 듣게 되는데 남들의 그런 평가에 엄청 신경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지요. 참으로 모순적인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부인은 그 중 전자에 해당합니다. 자아가 강하지 않기에 예수님께서 자기 딸을 치유해 주실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굳은 믿음이 그녀의 자아를 꺾어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고 견딜 수 있는 내적 힘을 키워주고, 그 힘이 커지는 만큼 그녀의 믿음도 더 깊고 단단해집니다. 이른 바 ‘믿음의 선순환’이 그녀의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 말을 못들은 체 하며 무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도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방인인 자신을 배척하고 심지어 ‘개’에 비유할 정도로 무시하며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청원을 차갑게 거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도 주님께 대한 간절한 믿음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저 딸에 대한 모성애 때문에 모욕을 참고 견디는 수준이었다면 상대방의 말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는 순간 폭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건 그만큼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능력은 물론이거니와 그분의 자비와 넓은 아량을 굳게 믿으며 그분께 철저히 의탁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녀처럼 믿지 못합니다. 무겁게 침묵하시는 주님 앞에서, 차갑게 외면하시는 그분 앞에서, 내 기도가 거부당하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쉽게 마음이 상하고 절망하며 포기해버립니다. 간절히 그리고 열심히 주님께 기도했는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괴로워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는 주님을 원망하며 그분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이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가까이로 부르시는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가나안 여인이 그렇게 했습니다. 자신을 향한 무시와 냉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님 가까이 다가갔고 그분 앞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어떤 처분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순명의 자세입니다. 그분께서 베푸시는 자비를 입을 수만 있다면 그 ‘양’이나 ‘크기’가 얼마가 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마음자세입니다. 전능하신 주님이시라면 ‘은총의 부스러기’만으로도 자기 삶에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지요.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절절한 신앙고백에서 겸손하고 성숙한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강한 그녀의 믿음이 드러납니다. 주님께 철저히 의탁하며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지녔기에, 전능하신 주님에 비하면 자신은 ‘강아지’에 불과한 부족하고 약한 존재임을 순순히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믿음이 위축되거나 비굴해지는게 아닙니다. 자신의 ‘주인’이신 주님은 그런 부족하고 약한 자신이라도 절대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기에 ‘그럼에도불구하고’ 주님께 대한 신뢰를 끝까지 거두지 않고 꼭 붙들지요. 그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참된 믿음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믿는대로 이루실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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