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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9 조회수46 추천수8 반대(0) 신고

 

"자신을 버림, 제 십자가를 짐, 주님을 따름"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10)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자신과 타협하는 일이 반복되면 습관이 된다. 스스로 변하기를 원한다면 바로 지금, 단호해져야 한다.”<다산>

 

단호히 다시 일어나 늘 새롭게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이후 선종하기까지의 삶은 전적으로 깨어 회개와 보속의 마음으로 정진했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늘 새로운 시작의 파스카의 삶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마라.”<논어>

 

공자의 처신도 참으로 단호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예禮’ 대신 ‘길道’이나 ‘진리眞理’를 넣어도 그대로 통한다 싶습니다. 지명만 봐도 유교가 국교였고 산이 많은 나라였던지라, 예禮와 덕德과 산山이 들어가는 지명도 참 많습니다.

 

새벽 교황님 홈페이지 1면에 소개된 교황님이 콜룸부스 기사들에게 주신 절박한 말씀이 모든 세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는 전쟁이요 참으로 ‘그리스도의 평화’가 절실한 시절입니다.

 

“성 에디트 슈타인 수녀 만세!”

 

오늘은 ‘만세7창’에다 한분 추가했습니다. 바로 오늘 미사중에는 기념하지 않지만 오늘 8월9일은 성녀 에디트 슈타인 동정 순교자(1891-1942) 축일입니다. 성 베네딕도, 성녀 가타리나, 성녀 비르짓다, 성 치릴로, 성 메토디오와 함께 유럽의 수호성인입니다.

 

성녀는 교회 역사상 유대인으로서는 처음 성인품에 오른 분으로 가르멜 수도회의 수녀로 1942년 8월9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순교한, 수도명은 십자가의 데레사 베네딕타입니다. 한나 아렌트, 시몬느 베유, 로자의 룩셈부르크와 함께 세계 4대 유대인 여성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1998년 시성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의 순교는 유럽사의 극적인 상징이자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를 잇는 화해의 가교다.”말씀하셨습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톨릭교회의 수호성인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로 미국과 똑같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새삼 우리 하느님은 역사의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마지막 절에서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 제1독서 나훔서의 나훔 예언자를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 역시 역사의 하느님이라는 진리입니다. ‘위로자’ 나훔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구약 성경에는 없습니다. ‘위로자’ 나훔은 참으로 어두운 시대에 희망의 힘으로 지탱해 나아가게 하는 위로와 위안을 자기 백성에게 가져다준 예언자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나훔 예언자는 유다에 기쁜 소식과 더불어 악의 제국 아실리아 니네베에는 격렬하게 파멸을 선포합니다.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넘어온다. 유다야, 축일을 지내고, 서원을 지켜라.”

 

유다 대신 대한민국을 넣어 읽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지금도 파스카 예수님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이어 니네베에 선포되는 불행입니다.

 

“불행하여라, 피의 성읍! 나는 너에게 오물을 던지고, 너를 욕보이며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라.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

 

오물 풍선이 떨어지고 날로 추락하는 국격의 작금의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싶어 섬찟한 느낌도 듭니다만, 이도 곧 지나갈 것이니 저력의 대한민국이요, 역사의 하느님은 순교자들의 대한민국을 돌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강론 쓰는 도중 고요히 외쳐보는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로 그 구체적 삶의 방법을 오늘 복음이 보여줍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가?”

그대로 바꿔 읽으면 아주 분명해집니다. 목표와 방향이 뚜렷하니 망설이거나 주저함 없이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요, 목표이자 방향이신 예수님을 따라 살면 됩니다. 저는 감히 비단 그리스도교 신자들뿐 아니라 온인류에 해당되는 만고불변의 진리 말씀이라 믿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바로 주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음으로 제 목숨의 얻는 영생의 길이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 참삶의 길, 성인의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한결같이 항구히 열렬히 사랑할 때 자발적 기쁨으로 자신을 버리고, 제 운명의 십자가를, 제 책임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제 본분을 다하는 구원의 삶입니다. 이렇게 시종여일 주님을 따르는 삶에 충실할 때 오시는 주님을 두려움없이 기쁨으로 환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주님을 앞당겨 맞이하는 오늘 ‘지금’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의 미사은총이 언제나 깨어 한결같이 주님을 따르게 하십니다. 끝으로 늘 새로운 각성覺醒을 주는 제 좌우명 고백기도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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