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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오 상선 바오로 신부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10 조회수9 추천수1 반대(0) 신고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보물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라우렌시오 성인 축일에 제1독서는 형제들을 돕는 일에 대해서 다룹니다. 사도 바오로가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의 요점을 밝힌 대목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2코린 9,8)

 

 

이 말씀 안에 "모든"이란 단어가 세 차례나 등장합니다. 모든 은총, 모든 면, 모든 것.

 

모든 은총은, 제외되는 부분 없이 모든 면에, 무형의 것과 유형의 것 모두를 포함한 소유를 낳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닌 모든 것은 어느 하나도 예외없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물적 재산이나 능력은 말할 것 없고 생명, 관계, 체험, 영혼의 갈망까지 그 소유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그러니 사실 우리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내 것'이라는 표현보다 '은총으로 받은 것'이란 말이 합당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넉넉하게 된 이는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소유가 선행을 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걸 받은 이들이 제 것인 양 저와 제 가족만 누리고 즐기면서 궁핍한 이들을 외면하기 일쑤지만, 사도 바오로는 원래 그리스도인의 나눔이 어떠해야 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선행으로 내어주고 나누는 이는"의로움의 열매"(2코린 9,10)를 맺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신학에서는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다고 밝히고 있지요.(로마 10,1-13 참조) 결국 은총으로 받은 것을 나누는 선행은 믿음의 표현이며, 의로움을 획득하게 하는 탁월한 도구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이미 사도 바오로 안에 이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통해 죽어야 사는 삶을 설명하십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실제로 밀알뿐만 아니라 모든 씨앗이 땅에 묻혀 수분과 온도의 작용으로 썪고 분해되어야 새싹을 틔우고 새로운 결실을 맺습니다. 끝까지 수분과 열기와 미생물의 침투에 제 껍질을 열지 않고 자기 형체 속에 갇힌 씨앗은 모양만 유지하고 있을 뿐, 생산성을 잃은 돌맹이 쪼가리와 다를 바 없게 되지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요한 12,25) 썩고 분해된 밀알은 죽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 난 밀알들 안에 자기를 남깁니다. 열매로 맺힌 낱알들 하나하나에 알알이 자기 생명의 자취를 남긴 채, 형체만, 껍데기만 소멸할 뿐이지요. 그러니 하느님보다 자기 목숨을 덜 사랑하는 이가 그분을 위해 마치 죽은 밀알처럼 선택한 죽음은 더 풍요로운 생명으로 건너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요한 12,26) 섬김은 따름이 요구되기에 추상적일 수 없습니다. 자기를 잊고 죽어서 열매를 맺은 스승을 따라 구체적으로 자아를 비우고 소멸되어야 비로소 섬긴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탱글탱글 살아 있는 제 이름, 제 욕망, 제 영광을 간직한 채 주님을 섬긴다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그런 영혼의 섬김은 예수님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니까요.

 

스승을 따라 자기 목숨을 내놓고 그분을 섬기는 이들은 "내가 있는 곳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분이 계신 "곳"을 장소 개념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성 삼위 하느님께로 가 닿게 됩니다. 삼위 하느님이야말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진정한 섬김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따르는 이에게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섬기는 이는 성 삼위 하느님 안에 현존하게 되지요. 은총을 받아 소유하게 된 유형 무형의 재산을 나누고 내어 주는 우리의 선행은 포기와 소멸이라는 일시적인 죽음을 거쳐 의로움의 열매로 새로 태어납니다. 그러니 그 열매들에는 은총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열매들 중 으뜸은 성 삼위 하느님 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죽어서 따르고, 따르면서 섬기는 이에게 주시는 최고의 특권일 겁니다.

 

이렇게 성 삼위 하느님 안에 현존하는 이는 아버지께 "존중"을 받을 것입니다.(요한 12,26) 존중은 이미 우리의 뜻이 아버지의 뜻과 일치되었기에 가능합니다. 그러니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모든 것을 은총으로,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시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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