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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26 조회수84 추천수3 반대(1) 신고

[연중 제21주간 월요일] 마태 23,13-22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굉장히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알려주신 ‘야훼’라는 이름 대신, ‘주인, 주님’이라는 뜻을 지닌 ‘아도나이’라고 불렀지요. 그런 경향은 ‘약속’이나 ‘맹세’처럼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신뢰’, ‘신용’의 영역에서도 드러납니다. 자기가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드러낼 때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제2계명’을 거스르는 죄이기에 해서는 안되며, 굳이 맹세의 보증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 필요하다면 하느님 대신, 성전이나 제단을 두고 맹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식의 대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허용한 ‘임기응변’을 개인적 이익을 얻기 위해, 혹은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간사한 마음이겠지요.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할 때에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을 강조하며 성전이나 제단을 두고 맹세한 뒤 자기들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누군가 그런 점을 지적하면 자기는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면서 맹세한 게 아니니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가려 했지요. 하느님을 이용하여 자기들이 누리고 싶은 이익만 실컷 누리고서는 어느 것 하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돈은 또 얼마나 밝혔던지 성전 안에 있는 금이나,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하느님께 약속한 것과 같으니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상대방이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를 지키지 않았다는 식으로 몰아가서 그들이 약속의 보증으로 삼은 금과 예물을 꿀꺽하려는 속셈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이 그런 식으로 가다가 결국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아는 상태에서 그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난처한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다른 말들을 입으로 내뱉는 정도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양심이 너무 찔리고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기에 자기들이 입으로 내뱉는 그 말이 맞다고 자기 자신을 세뇌시켜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떻게 하는게 하느님 뜻에 맞는 것인지 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만, 남들이 자기를 볼 때에만 하느님 뜻을 잘 지키는 척 ‘위선’을 떨게 되지요. 그럴수록 하느님과 그분 뜻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기에,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두고 ‘불행하다’고 탄식하십니다.

 

그들처럼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하느님 나라를 눈 앞에 두고도 엉뚱한 곳을 헤매는 ‘눈 뜬 장님’이 되지 않으려면, 재물에 대한 욕심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내 마음에 심어주신 양심, 우리에게 주신 계명과 말씀들에 비추어 옳다고 생각되는 것은 즉시 실행에 옮기고 그르다고 생각되는 것은 단호하게 끊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죄를 짓는 일도, 다른 이가 나로 인해 죄에 걸려 넘어지는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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