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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연중 제 22주일 - 두려워 하지않고, 사랑으로 하는 우리/ 김찬선 신부님 ~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08:25 조회수8 추천수0 반대(0) 신고

 

 

직장 상사가 하라는 것은 군소리 없이 하지만

엄마에게는 함부로 말하면서 엄마의 말을 콧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조폭의 막말은 꼼짝못하고 들으면서 아버지의 말은 가볍게 넘긴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인데 왜 이럽니까?

 

 

 

그것은 사랑으로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더 풀이하면 사랑으로 하는 말을 사랑으로 듣기보다

강압으로 하는 말을 두려움 때문에 듣기 때문입니다.

 

 

 

주먹이 법보다 가깝다고 흔히 말하는데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걸 뒤집으면 법은 주먹보다 멀며,

사랑은 법보다 멀고 주먹보다는 더, 더 멉니다.

 

 

 

그런데 오늘 신명기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또한 내가 오늘 너희 앞에 내놓는 이 모든 율법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

 

 

 

그렇다면 하느님은 다른 누구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가까이 계시는 분이신데

우리는 그 하느님보다 주먹을 더 가까이 느끼고 법이 더 가까이 있는 것이며,

사랑의 말보다 주먹의 말을 더 잘 듣는 것인데 이런 현상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우리에게 가까이 계신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부모이고 하느님이십니다.

조폭은 결코 우리에게 가까이 있지 않고 우리에 관한 관심이 도무지 없습니다.

 

 

 

사실 관심이 없다면 관계도 없는 것이고

관계가 없다면 그것이 제일 먼 것이지요.

 

 

 

이렇게 조폭은 우리에게 관심도 없고 멀리 있지만

우리는 되레 두려움 때문에 주먹을 가까이 느끼며,

그의 말을 듣는데 이것이 다 우리의 미성숙과 약함 때문입니다.

 

 

 

사실 미성숙하고 약한 사람이 사랑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런 사람에게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고 요한의 서간은 충고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전통을 중요시한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들은 얘기이기도 하고 저도 경험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본당 그래서 전통이 있고 뼈대가 있는 본당에 사제가 새로 가면

그 본당 신자들은 본당 사제보다도 본당 원로들 눈치를 더 본답니다.

 

 

 

그래서 신부가 새로운 사목을 펼쳐도 그리고 사목회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원로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신자들이 달리하기에 신부들이 애를 먹고,

심지어 교무금을 더 내고 싶어도 원로가 적게 내면 그보다 적게 낸다고 합니다.

 

 

 

아무튼 미성숙한 신앙인은 하느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데

하느님의 사랑은 만만히 보고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인인 우리는 두려워서 하지 않고 사랑으로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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