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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참나의 발견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02 조회수72 추천수9 반대(0) 신고

 

“예수님의 얼굴, 참나의 얼굴”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 가르침을 묵상하나이다.”(시편119,97)

 

순교자 성월 9월, 위 화답송 시편 고백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9월2일부터 9월13일까지 교황님은 45차 해외 사목 방문길에 오르니 참 대단한 열정입니다. 인도네시아, 파푸아 뉴기니아, 동티모르, 그리고 싱가포르입니다. 어제 9월1일 순교자 성월 첫날, 선물받은 “거제도 가는 길”을 독료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처형받은 호남의 사도라 불리는 복자 유항검 아우구티노(1756-1801)의 딸 ‘유섬이(1793-1863)가 아홉 살에 완주 초남이에서 거제 송곡리에 이르기까지 320km 유배길을 따라 순례한 이야기를 적은 글입니다. 

 

16세 이하 아이였기에 처형은 면하고 양반 신분에서 노비로 강등되어 살아 유배길에 올랐고 유배지에서 70세 동정녀로 생애를 마친 유섬이였습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도는 양반, 중인, 상민, 천민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신분사회였고 천민에 속하는 노비는 30% 정도였다 합니다. 고종시 1886.2.6. 노비제가 폐지되지 까지 계속됐던 신분제도였습니다. 제가 아끼는 세권의 평전 인물에 관한 새로운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퇴계 이황은 노비를 이용한 재태크의 달인으로 보여집니다. 360명이 훨씬 넘는 노비에 60만평이 넘는 전답을 가진 농업 경영인이었습니다. 노비 매매금지 상소를 했던 율곡 이이도 죽은 후 상속 재산 목록 분재기에 119명 노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일화도 소개합니다.

 

‘정약용(1762-1836)은 1801년 신유박해때 강진으로 유배갔습니다. 유섬이 처자가 거제도로 유배갔던 바로 그해, 나이로보면 정약용이 유섬이 부친 유항검보다 여섯 살 아래였습니다. 유섬이 처자는 거제도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배교했던 정약용은 18년후 해배되어 경기도 광주 마재로 돌아갔습니다. 정약용을 보살폈던 강진 여자 정씨와 딸 홍임이가 따라갔습니다.’

 

물론 이런 일화들이 세분의 위대함에 손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균형을 잃지 않고 깊은 연민과 이해와 수용의 마음으로 전체를 깊이 잘 들여다 봐야 함을 배웁니다. 제가 볼 때 다산의 강진에서의 유배생활은 치열한 보속시간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예수님의 공생애에 앞선 출사표와도 같은 대선언이 얼마나 혁명적인지 깨닫습니다. 말그대로 인류의 해방자, 인류의 빛,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참나의 신원을 발견하고 확인한 예수님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평생 좌우명으로 삼아 늘 잊지 않고 실천하며 사셨을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이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여기 오늘은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의 오늘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우리 모두 모든 예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예수님과 함께 복음선포의 일꾼으로, 또 참자유인으로 살게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자 모두가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 합니다. 이어 선입견과 편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무지한 고향 사람들에게 한말씀 하시니 이또한 예나 이제나 영원한 진리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선입견,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편적 무지의 인간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구원의 보편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또 하나의 새로운 엘리야, 엘리사로, 즉 모두의 구원자로 자신의 신원을 알리는 예수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찾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빛이 되시는 주님이심을 천명합니다.

 

“재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환자가 많았지만 그들 가운데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참으로 믿음으로 자신을 개방한 모든 이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시어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빛의 자녀로 살게 하시는 해방자 예수님 자체가 바로 복음임을 깨닫습니다. 역시 화가 잔뜩 난 무지한 고향사람들의 적대적인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자기의 길을 가시는 대자유인 예수님의 마지막 묘사도 참 멋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제1독서에 사도 바오로의 고백도 감동적입니다. 나에게 그리스도는 생의 전부라는 사도의 고백도 생각납니다. 예수님을 만나 참나의 사명을 발견한 바오로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실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나의 말과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바오로 사도는 물론 우리 모두가 ‘인간의 지혜’에 바탕둔 믿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둔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어제 읽은 성철 스님의 일화도 잊지 못합니다. 출가하려고 자기를 찾아 온 딸(불필스님)에게 내렸다는 수도팔계(修道八戒)입니다. 희생(犧牲), 절속(絶俗), 고독(孤獨), 천대(賤待), 하심(下心), 전념(專念), 노력(努力), 고행(苦行)이며, 이중 천대와 하심은 바오로의 영성과 일치합니다. 

 

바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들을 부처로 보는 천대와 스스로 자기 못난줄을 아는 하심은 마음속 서운함이나 미움을 몰아내는 비결입니다. 바로 천대와 하심은 십자가상에서 자기를 완전히 비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처럼 느껴집니다. 천대와 하심속에 발견되는 그리스도의 얼굴이요 참나의 얼굴입니다. 순교자 성월,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비움과 겸손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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