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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9.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04 조회수12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4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전에 갑곶성지에 있을 때의

겨울이 생각납니다.

갑곶성지는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너무 추웠습니다.

그래서 숙소의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꼼꼼하게 살펴보니 문틈으로

또 창문 틈을 통해 차가운

겨울바람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풍지를 붙이고 비어있는

틈들을 모두 막았습니다.

그런데도 추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을 쓰자

집이 따뜻해지고

아늑해졌습니다. 무엇일까요?

보일러 온도를 높이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난방비 걱정에 얼지 않을

정도로만 온도를 낮춰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그토록 추웠던 것입니다.

보일러 온도 높이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습니다.

다른 방법들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른 시일 안에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관계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사랑이 없다면

근본적인 회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뿐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보일러 온도를

높이는 것과 동일해 보입니다.

뜨거운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 실천을 괜히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계 회복을 위해,

또 각종 문제를 풀 수 있는

접적 방법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병든 장모를

고쳐주시고 질병을 앓는 이들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기

위해서는 시몬의 집에 가서 장모에게

직접 가까이 가셨습니다.

또 다른 질병을 앓는 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왜 이렇게

불편하게 행동하셨을까요?

그냥 말씀만으로도 편하게

고쳐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은

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냥 입으로만 “사랑해”라고

말한다고 사랑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의 말에 따른 행동이 있을 때,

그 사랑에 비로소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장모와

병자들이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만이 사랑을 세상에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삶 안에서

당신의 따뜻한 사랑을

계속 주고 계십니다.

나의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는 충분히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바라보면서, 우리 역시

사랑의 온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평불만을 줄이고 만족의 삶,

기쁨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불만은 생활에 독을 섞어 놓는다.

참고 견디는 것은 생활에 시적인

정취와 엄숙한 아름다움을 준다.

(아미엘)

사진설명: 시몬 장모의 열병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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