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반도, 서학과 동학 (한반도와 동아시아 대전쟁)
작성자최영근 쪽지 캡슐 작성일2024-09-09 조회수30 추천수1 반대(0) 신고

 

 

 

 

 

 

*** 19세기 한반도, 서학과 동학  (부제 : 한반도와 동아시아 대전쟁)

 

한반도와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드리는 글,  두번째 입니다. 

19세기 한반도, 서학과 동학을 묵상해 봅니다.


19세기 한반도, 그 터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은 어떠했을까요? 

우리가 살고있는 터전, 우리들의 할아버지의 할머니들이 살았던 19세기 한반도를 생각하면..

참으로 여러 감정 (슬픔, 분노, 아쉬움, 기쁨) 들과 여러개의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세도정치와 실학,  지배계층의 폭정과 백성들의 어려움, 천주교 박해, 다산 정약용과 혜강 최한기, 

동학의 전개와 갑오농민전쟁,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쇄국정책과 개항,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 침략 등등..

그 급변하는 사회 변화와 다양한 삶의 궤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한 시대와 사람들의 풍경을 살펴본다는 것은 너무나 방대하고 막막한 작업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시각과 방법으로 시대와 사람들의 모습을 연구하고 잇습니다.

정치사, 사회경제사, 사상사, 풍속생활사 등 다양한 분야로.. 여러가지 다양한 시각으로.. 


오늘은 오로지 단 한가지의 시각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서학운동과 동학운동의 자발적이고 광범위한 활동 입니다.

저는 이 주제가 19세기 한반도의 가장 주목할만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시작해서 1894년 갑오 농민전쟁(동학 농민 전쟁)으로 이어진 19세기 한반도는

전 국토가 동학 운동과 서학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피로 물들여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왜 가장 소중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서학 운동과 동학 운동을 전개해야만 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가톨릭의 정경인 성서는 3번 정도 읽은것 (한번 통독) 같은데,

동학 (천도교) 의 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아직 한번도 통독을 하지 못햇습니다.

움.. 요번 기회에 성경과 동경대전 통독일독을 함 도전해 봐야겟습니다.


가톨릭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가톨릭신자로 수십년을 꾸준히 신앙생활을 해왔고

순교성지 순례도 계속 진행해 오고있고 성경도 몇번을 읽고 수십년간 묵상 해왔지만,

동학에 대한 소개는 솔직히 백과사전들과 관련 서적 몇개를 찾아보고 인용한 것 입니다.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한국근대사 강의도 들었고

개인적으로 한국근대사와 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나름 공부를 했는데,

계속해서 연구를 하지 못한것이 아쉽습니다. 졸업후 돈벌어 밥벌이를 해야하기에..


아무튼 내가 말하고싶은 요지는 이 글의 결론 부분에 이야기 될것 입니다.


---------------------------------------------------------------


** 서학운동과 동학운동은 무엇이며 왜 일어나고 급속도로 전파된 것일까요?


* 서학이란?

서학은 서양의 학문으로서 조선시대는 천주교 가톨릭을 의미합니다

조선 후기 양반 (남인) 들은 학문적인 호기심에서 천주교를 연구하였습니다. 

( 당시의 유학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관이라서 아마도 매우 신기해 했을것 같습니다 ) 


학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된 서학은 (1779년,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서 천주교 서적 강학회가 열림 )

종교적인 믿음으로 발전하여 1784년 이승훈이 직접 북경으로 가서 베드로 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신자가 되기도 합니다. 

당시 북경에 있던 서양 선교사들은 이 사건을 매우 놀라와했다 합니다.

선교사가 가서 선교하지 않은 미교화국의 청년이 자진하여 찾아와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된 사례는 가톨릭 사상 유례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교가 아닌 구도에 의해서 한국 최초의 세례 교인이 된 이승훈은 귀국하여 

이벽, 권일신과 함께 명례방공동체을 만들어 신앙공동체를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박해와 배교를 경험하다 1801년 신해박해 때 사형당합니다. 

한국 천주교는 1784년을 천주교 창설의 원년으로 삼아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시작을 좀더 살펴보자면..

임진왜란 당시에 우리나라에 왔던 일본의 군인들 중에는 

분명히 기리시딴 (크리스찬) 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군을 따라온 예수회 선교사 그레고리오 세스페데스가 전파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면서 

가톨릭 서적과 지구의 등을 가져와 전래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를 한국 천주교의 시작이라고 보기에는 미약합니다.


선교사가 없이 학문으로 서학을 배우고, 스스로 주교를 찾아가 세례를 받고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사제 없이 평신도들끼리  미사를 드리고 성사를 하고 주교를 임명하는 등 (가성직 제도)

자체적으로 신앙공동체를 유지한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 입니다

결국 북경교구에게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가성직제도는 교회법에 어긋난 것이라는 판단을 받게됩니다.   

북경교구는 조선의 신앙공동체를 인정하고 주문모 신부를 조선에 선교사로 파견합니다

가톨릭 역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ㅋㅋ


양반 계층의 호기심으로 학문으로 시작한 서학이지만

천주교는 만민 평등 사상, 박애 사상,  내세 사상 등을 중심으로 당시 조선시대의     

주로 평민 백성들에게 호응을 받으며 교세가 확장됩니다.


* 동학이란?   

동학은 조선말기 1860년, 경주 출신 양반인 최제우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최제우는 10여년간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한후에 제세구민의 뜻을 품고, 

서학(천주교)에 대립되는 민족 고유의 신앙을 제창하고 동학이라 이름 짓고 

한민족 전래의 풍류 사상과 유·불·선 의 교리를 토대로 

'인내천' (사람이 곧 하늘이므로 모든 사람은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 아니된다) 과 

'천심즉인심'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 의 사상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제우는 포교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864년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당하고, 

최시형이 2대 교주가 되어 비밀리에 교조의 유문인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간행하는 

한편 교리를 체계화하고 교세를 확대시켰습니다. 

최시형은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한다' (사인여천) 를 주된 가르침으로 하여,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의 산천초목에 이르기까지 한울에 내재한 것으로 보는 

범천론적 사상이 널리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동학은 조선의 지배논리인 신분, 적서제도 등을 부정하는 

현실적이고, 민중적인 교리는 지배계층의 폭정에 시달리던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되던 삼남 지방에 재빨리 전파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조선 전체 인구 2천만 명의 10%가 넘는 2~300만 명이 동학교도였다 라고 합니다.



** 서학과 동학의 초창기 에피소드


* 서학(천주교) 과 동학의 초창기 시절의 에피소드를 살펴보자면, 

참으로 인간적이고 소박하며, 가슴에 메어지고 뜨거워짐을 느낍니다.


우선 동학을 살펴보자면...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박한 종교 탄생과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동학은 인간적이고 이성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의 종교 입니다


*수운 최제우의 일화

10여년 간에 걸쳐 전국을 돌면서 장사를 하며 수많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다가

경주 용담정 옛집으로 돌아와 도를 닦다가, 어느날 홀연히 하늘님이 나타나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인간들이 어찌 알리오

 천지는 사람들이 알면서 귀신은 알지 못하다,  귀신이라는 것이 바로 나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

*'찬 물에 몸담그면 해로우니라'  

최시형은 최제우가 득도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뵙고,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용맹정진하고 수심정기를 하면 하늘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수운 선생의 말을 듣고, 열심히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수운 선생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가고 없는 사이,

검등골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가마니를 문에 쳐서 어둡게 하고 꿇어앉아 

묵상을 하며 도를 닦았습니다. 그는 그해 겨울 내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늘님 소리는커녕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너무도 답답한 마음에 바깥으로 나와서, 계곡의 얼음을 깨고 

풍덩하고 물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따뜻한 몸으로 찬 물에 들어앉으면 몸에 해로우니라."

라는 말을 하늘로부터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소리도 못 들었습니다.


7개월을 그렇게 지내는 동안 수운 선생을 간절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수운선생이 보고 싶은 나머지 걸어서 경주의 집으로 갔습니다.

해월 선생과 수운선생은 기적적이고 눈물겨운 상봉을 했습니다.

수운선생이 “하늘님 소리 듣는 것은 어떻게 되었느냐?”

해월은 “아무 소리도 들은 것은 없고, 어느 날인가 하도 답답해서 찬물에 들어갔는데,

하늘에서 우렁차게 ‘따뜻한 몸으로 찬 물에 들어앉으면 몸에 해로우니라.’라는 말을

분명하게 들었습니다. 그것 한번 밖에 들은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수운 선생이 언제 그랬냐고 묻자,  해월 선생이 대략적인 날짜와 시간을 얘기하자,

그 시각에 내가 '따뜻한 몸으로 급하게 찬물에 들어가면 해롭다' 쓰고 읊조렸다. 

그 소리를 네가 들은 거로구나!


해월은 그 순간 득도했습니다. 해월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저는 하늘님의 소리를 저 하늘로부터 들을 줄 알았는데,

바로 사람의 소리가 하늘님의 소리였군요!

선생님은 남원에 계시고 저는 검등골에 있지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제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이군요!"

이 깨달음이 동학의 인내천 사상의 핵심이었습니다.

사람의 소리가 곧 하느님의 소리라는 깨달음입니다.

------------------------------------------------------


*베틀을 짜는 며느리가 바로 한울님이시다  

해월 최시형이 무더운 삼복 더위날에 청주 변두리에 있는 측근 신도였던 

서택순의 집을 지나다가 들러서 찬물 한 그릇을 청합니다.

서택순이 찬물을 드리자 물을 마시는 중에  조그만 창이 하나 나 있는 새카만 골방에서 

‘덜커덕덜커덕’ 베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베를 짜는 이는 틀림없이 그 집의 며느리입니다. 최시형은 그때 서택순에게 

“지금 자네 며느리가 베를 짜는 것이냐, 한울님이 베를 짜는 것이냐?”고 묻고

그리고는 다시 한 번 “지금 자네 며느리가 베를 짜는 것이냐, 

한울님이 베를 짜는 것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서택순은 아무 대답도 못했으며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베를 짜는 며느리가 바로 한울님이시니, 베짜는 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며느리를 

일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신 한울님으로 알고 한울님으로 섬겨라”라는 뜻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

* 해월 최시형 

그는 포교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시간만 나면 멍석을 짰으며, 멍석에 쓸 새끼를 꼬았습니다.

멍석을 짤 짚이 떨어지면 꼬았던 것을 풀어서 다시 꼬았습니다.

그러시면서 “한울(하늘)님은 늘 쉬는 적이 없으시다” 라고 하셨습니다.

가는 곳 마다 빈집이 있으면 그곳에 살면서 과일 나무를 심고 멍석을 짰습니다.


1863년 추석날, 해월은 마침내 수운 선생으로부터 도통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 수운 선생은 체포되어 대구에서 참형을 당합니다. 

이후 30년간 해월은 지명 수배범처럼 ‘최보따리’로 관군에게 쫓기며 숨어 지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동학을 포교하게 됩니다. 

한 사람 한사람의 존엄함을 일깨우는 가르침을 평생 숨어 다니며 펼쳤고,

이것으로 동학은 사멸하지 않고 오히려 불길처럼 퍼져나갈 수 있게 된것 입니다. 



* 서학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시작하여 스스로 북경의 주교를 찾아가 영세를 받고

선교사가 없이 평신도 만으로 미사와 성사를 행사하는 가경제도를 운영하는 등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한반도의 천주교는 여러모로 독특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대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어릴때 머나먼 타향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사제서품을 받아 

한반도에 입국했는데 불과 1년도 안되어 순교하게 됩니다. 피의 순교자 입니다.

 

두번째 사제로서 한반도에 입국해서 충청북도 진천군 배티성지를 기반으로

천안 이남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삼남지방의 120여개가 넘는 교우촌 공소를

도보로 걸어 다니며, 천주교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이렇게 매년 교우촌 공소를 걸어다니며 11년 6개월간 사목하시다가

결국 과로와 장티푸스로 40세의 나이에 문경에서 병으로 선종하였습니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땀의 순교자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대비되는 한국인 최초 사제와 두번째 사제의 여정.

또한 한국 천주교는 일세기 걸친 박해로 인하여 일만명이 훨씬 넘는 순교자가 잇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않은 무명의 순교자 이기도 합니다.


암튼, 순교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씀들은

그야말로 가장 솔직하고 절실한 말씀이며 신앙의 정수입니다. 


-----------------------------------------------------------------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목잘려 순교

" 나는 이제 마지막 시간을 맞이했으니 여러분은 내말을 똑똑히 들으십시오. 

  내가 외국인들과 교섭을 한 것은 내 종교를 위해서였고, 내 하느님을 위해서였습니다.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 내게 시작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뒤에 행복하기를 원하면 천주교를 믿으십시오.”


*정군보  쁘로따시오 , 1839년 5월 20일 한양 형조 옥에서 병사 

" 저는 천주교인 입니다. 천주교인으로서 죽기를 원합니다 "


*김업이 막달레나, 김아기 아가타  1839년 5월24일 서소문 밖 참수

" 제 남편과 아들이 배교한 것이 제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신앙을 보존하고, 신앙을 위하여 죽기로 하엿습니다 

  저는 예수 마리아 외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

  차라리 죽을지언정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박아기 안나 ,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참수 

" 각자 다 자기 주장이 있는 법입니다

  나로 말하면 주를 위하여 죽기가 소원 입니다"


*박희순 루치아 ,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참수

" 이제야 우리 주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고통이 어떠했는지 조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 함게 순교의 길을 걸어 천국의 영광을 얻도록 합시다 "


*남명혁 다미아노 ,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참수

" 주님, 감사합니다. 이 몸이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당신께서 우리위해 흘린 피, 당신께서 거니신 길에 오늘 당신의 종 다미아노는 

  당신 가까이 가려 하옵니다. 주님 보소서 저들의 어리석음, 저들의 잘못을 용서하소서 "     


*장성집 요셉 ,  1839년 5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 과거에 제가 지은 죄는 모두 돈을벌어 잘살아보겠다는 욕망에서 나온것 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같은 모양으로죄를 짓기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편이 낫습니다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의 괴로움을 잘참아 받음으로써 저는 죽은 뒤에

  하늘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려는 것입니다 " 


*최경환 프란체스코 , 1839년 9월 12일 한양 포청옥 장독사  

"저는 칼 아래서 죽음으로써 신앙을 증언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은 제가 감옥에서 죽는 것이군요. 

 주님의 거룩하신 뜻이 제게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

-------------------------------------------------------------


*서학 운동과 동학 운동의 초창기의 에피소드는 

운동을 대표하는 순교자들의 말씀으로 마무리 하려 합니다.


해월 최시형의 말씀

" 내가 고종을 절대 용서할수없는 이유는

  19세기를 분연히 떨쳐 일어난 민족종교 동학을 온갖 방법으로 짓밟았기 때문이다

  이는 민족의 자주성과 근대화 그리고 전통성까지

  모든 발전동력을 모조리 짓밟아 회생불가능으로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유언  

“ 부디 서러워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 가지로 영원히 천주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 


** 서학과 동학의 진행과 결과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시작하였으나 종교적인 믿음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천천히 전파되고 있던 천주교는 여러가지 다양한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됩니다.


전통적인 제사문제로 일어난 신해박해 (1791년) ,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노론 벽파가 득세하자 남인의 제거 명분에 천주교를 이용한 신유 박해 (1801년),

을해 박해 (1815년), 정해 박해 (1827년),  헌종의 섭정인 순원왕후에 의해 

안동김씨 세력제거를 목적으로 시작된 기해박해 (1839년),  병오 박해 (1846년),  

경신 박해 (1860년),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에 의해 시행된 병인 박해 (1866년)


1791년 신해박해 부터 1866년 병인 박해 까지의 기간 동안

일만명이 훨씬 넘는 순교자가 발생합니다,


조선 왕조는 천주교를 전통적인 유교 문화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겨 탄압했지만, 

한국 가톨릭교회는 그러한 박해에도 교세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습니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며 온전한 사목활동이 가능해졌으나, 

계속되는 박해로 상당수의 신자가 순교하여 천주교는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선교사를 통해 들어온 개신교는 별 다른 박해 없이 

적극적인 포교 활동으로 교세를 확장했으며, 1907년 평양 대부흥을 기점으로 

개신교는 천주교의 신자수를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동학의 전개와 갑오 농민전쟁 ( 동학 혁명 )


정부의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광범한 계층의 민중을 집결하는데 성공한 동학은 

사도난정과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의 신원운동을 전개, 

1892년 12월 삼례도회, 1893년 4월 보은에서 수만 명의 동학신도들이 집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894년 2월 5일 전봉준을 선두로 농민군이 전라도 고부에서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관아를 습격, 세미를 빈민에게 나누어주고 만석보 저수지를 파괴하고 해산한 것이 

갑오 농민전쟁(동학혁명) 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습니다.


안핵사 이용태는 이때 봉기한 농민들을 동학도라며 탄압하자 

이에 격분한 농민들은 4월에 보국안민, 광제창생을 부르짖으며 

김덕명, 손화중, 김개남 등이 이끄는 수만 명 농민군이 체제를 갖춰 

무장 영광장성 등 전남북 일대를 차례로 점령하여 탐관오리를 추방하고 

그해 5월 31일에는 전주성을 점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청나라에 원군을 청했고, 6월 8일 청나라군이 아산만에 상륙하자 

일본 역시 천진조약에 의해 거류민 보호를 구실로 6월 7일 출병할 것을 결정했습니다.


처음 정부는 동학군을 회유하여 전주에서 강화를 맺고 휴전했습니다. 

그러나 휴전의 결과는 동학군에 불리하여 정부는 조약을 이행하지 않는 한편 

일본군들이 왕궁을 점령하는가 하면 7월 26일 청일전쟁을 일으키는 등 

일본의 세력이 점점 팽창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자 동학군은 10월 12일 삼례회의를 열어 

최시형, 이용구 등 북접 온건파의 반대를 뿌리치고 전봉준ㆍ김개남이 북상하게 되자 

전국적인 혁명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전봉준의 수만명 호남군과 손병희의 수만명 호서군은 

공주에서 관일 연합군과 대결, 격전 분투했으나 

근대식 무기와 훈련을 갖춘 일본군에 패하여 퇴각하고 말았습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 2천만명 가운데 2백만명 이상이 

갑오 농민전쟁에 참여하였으며 30만명 정도가 학살되었다고 말합니다. 


갑오 농민전쟁 (동학혁명)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차례로 1905년 을사조약, 고종퇴위, 군대해산 등 

침략의 수순을 전개하더니 1910년 강제합병을 함으로써 조선왕조는 끝을 맺고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시대로 접어들게 됩니다.


* 서학과 동학 내용 교리 비교   

자, 이제는 서학(가톨릭)과 동학(천도교)의 내용을 비교해보는 시간이 되엇습니다. 


우선 동학을 보자면...

교조인 최제우의 일화, 최제우와 최시형의 일화, 최시형과 손병희의 일화

너무나 인간적이고 소박한 종교 탄생과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동학은 인간적이고 이성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의 종교 입니다


서학의 경전, 성경 (특히 4대 복음) 에는 예수님의 일화가 많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지극히 인자하고 자비심 넘치는 인격과 놀라운 세계관의

이야기도 많지만  이성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지 말 몇마디로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눈먼 장인을 고치고, 흉한 나병을 고치고

바람과 풍랑을 제어하고, 물위를 걷는 모습 등  기적 이야기가 많습니다.


서학은 절대적인 창조주 하느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동학은 사람이 곧 하느님 이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다.


서학에서 인간은 타락하여 죄를 짓고 스스로 구원할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스스로 인간으로 육화하여 인간의 죄를 대신하고 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원이 서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계신 하늘나라와 죄악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을 연결해주는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이 천주교의 핵심입니다


서학은 메시야의 강림을 말합니다. 동학은 개벽 사상을 말합니다

‘다시 개벽’은 최제우 사상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중국(유교) 문명의 몰락에 충격을 받으며 시천주 체험을 통해 

보국안민의 길을 제시한 선언으로서 나라와 민중을 구하려 했습니다. 


19세기 한반도에는 기존 체제인 유교 문명을 유지하려는 수구 세력 (양반) 과  

새로운 사상으로 사회 변화를 시도하는 개화 세력 (천주교와 개신교) 그리고

양편을 함께 비판했던 자생적 근대화론인 개벽 사상 (동학) 이 존재한것 입니다. 


서학 즉 가톨릭은 하느님 중심이고, 믿음의 종교이고, 기적의 종교 입니다.

동학 즉 천도교는 인간 중심이고, 이성의 종교이고, 생활의 종교입니다. 


내가 이 글을 쓸수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동학은 이성 만으로도 이해할수 있는 종교이고

천주교는 이성과 믿음으로 이해하고 생활하는 종교인데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는 합리적인 이성으로 모든 인간은 서로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할수있는

존재이다 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이성이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근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성을 초월하는 믿음이 존재할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양면성이 이상한가요? 글쎄요 저에게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성을 초월하는 믿음도 인정하는 것.. 이상하시나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말이 있습니다.

" 그냥 믿겨지기에 믿는다 "

내가 신앙을 계속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이 진리이고 정의라고 이성으로 생각하고 또한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서학과 동학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기묘한 점을 발견합니다.

즉 같은 시대 그리고 같은 지역의 비슷한 사회 환경에서 발생하고 전개된 사상이지만

그 내용은 너무나 다르다는 점 입니다.  


그러나 기본 동기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동기는 무엇일가요?

동학과 서학.. 가장 기본적인 마음은 두가지라 생각합니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열정 그리고 보다 나은 세상을 희망하고 만들려는 마음 입니다. 


*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서학운동과 동학운동을 보고있으면

기원 1세기에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난 나사렛 예수 무브먼트가 이 떠오르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 무브먼트는 나사렛 예수라는 목수이자 순회설교가가 고대 로마의 최고형인 

십자가에서 못밖혀 죽은 이후에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했다 하는 믿음이

예수의 제자들의 전도에 의해 펼쳐진 운동입니다.

이러한 무브먼트는 팔레스타인을 넘어서 조직화되어 지중해 세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주로 전파되어 인류사의 거대한 흐름인 

크리스트교 전도의 역사가 되엇습니다. 


물론 우리 한반도에서 발생한 서학이나 동학은

자국내의 지배계층과  외국의 군대에 의해 신도들의 박해받고 순교하고 학살되어 

기세가 모두 꺽이고 더욱큰 인류사의 흐름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할수있지만 

우리 한반도 에서 만큼은 커다란 영향을 지니고 한 세기를 지배했다 할수 잇습니다


-----------------------------------------------


*19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인 서학운동과 동학운동을 간략히 살펴보앗습니다.


과연 동학과 서학 운동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학자들은 ' 서학과 동학은 조선시대 지배 계층의 폭정에 대항하여 일어난 

백성(민중)의 자발적인 사회 운동이라 할수 있다 ' 라고 말합니다. 


19세기 한반도는 그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백성들(민중) 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지배 계층은 부패하고 타락했으며 일반 백성들은 가난하고 먹고살기에도 힘들었습니다.

최고 권력층은 권력유지를 위하여 외국의 군대를 불러들여 백성을 학살할 정도로 몰염치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조선의 백성들은 필사적으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동학 운동과 서학 운동 입니다.


그런데 저는 보다 근원적인 동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진리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정의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아닐까요?

동양이기에 진리와 정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서학운동과 동학운동에는 참여했던 사람들의 간절한 

진리에 대한 열망, 정의에의 열정이 분명하게 생각됩니다.

즉 사회적인 동기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동기가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19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난 서학과 동학의 자발적인 발생과 활동은 

진리에 대한 열망, 정의에의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전개한 사회개혁 운동입니다.

저는 서학과 동학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유산이자 자랑거리 라고 생각합니다. 


-------------------------------------------------------------------------


자, 이제 21세기 한반도에 대한 글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글은 현재 작성중인데 언제 올리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작성 중이고.. 계속 기도하고 있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지네요.

미국에 대한 글도 양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점점 힘이 더 드는군요. 에고~

암튼, 한반도와 미국의 21세기는 글을 몇개로 나누어서 번갈아 올려야 할듯.. 


21세기 한반도는 19세기와 많이 다릅니다.


우선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로 분단되어 있습니다. 아주 무서운 현실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고있는 남한을 중심으로 이야기 해 봅니다.

우선 인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사회계층은 아주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가장 핵심이라 할수있는 중간계층은 아직 충분합니다

문맹은 없고, 국민의 상당수가 고등교육을 나온 사람들 입니다

6월 항쟁과 촛불 혁명으로 보여지듯이 시민의식도 아주 높습니다.

국민의 반 정도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 무신론자들이고

또한 반정도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이슬람 등 신앙을 가지고 잇습니다. 


한국전쟁 (6.25) 으로 인하여 수백만명이 다치거나 죽고, 남북한 모두 국토는 초토화 되었고

경제규모가 세계 최하권이었던 나라에서 이제는 세계 14위권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수출할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국토가 크지도 않고 인구수도 고만고만한 나라에서

오로지 인적 자원만으로 세계에서 주목할만한 국력을 키워낸 저력입니다.

아주어릴때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온 나라가 난리치며 떠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100억 달러 수출을 하는 기업들도 많은 나라가 되엇습니다.


무엇보다도 남한의 정치적인 변화, 민주화를 이뤄낸 성과를 주목하고 싶습니다.

서양의 외래 사상인 민주주의 사상을 교육받고 자라난 세대들이 

419, 518 항쟁을 거져 6월항쟁과 촛불혁명을 이루며 민주주주의 꽃인 선거와 투표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룩하고 이제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정권을 이루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하는것이 

당연한 일이 될 정도로 시민의식이 성숙하였습니다.


어찌보면 미국, 영국, 프랑스과 비견할수있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국가가 되엇습니다.

뭐..  요즘 같은 검찰폭정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민주주의는 시스템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수준과 관계있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또한 남북한이 분단된 우리의 현실로 볼때, 비상상황이 되면 군부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암튼 남한의 발전과 변화는 정말 놀라울만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이룩한 남한의 시민들은 자랑할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 생각합니다.

물론 미국의 전 세계전략 중 남한 전략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 이란 말들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이고 스스로 이룩한 것입니다.

어찌보면 남한만 보아서 일부분이지만,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라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19세기 한반도와 21세기 한반도는 참으로 많이 다르다 할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똑같습니다. 어쩌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시기가 그렇겠지만

지배계층 기득권카르텔은 여전히 이기적이고 사악하고 부패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사악함은 문명이 발달함에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는듯..  


그러나 21세기의 한반도의 역사는 19세기 와는 분명히 다를것 입니다.

19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가장 비극적인 사건들인 

지배계층에 의한 천주교인에 대한 일방적인 박해와 순교 그리고 지배계층과 일본군에 의한  

동학교도에 대한 일방적인 학살과 순교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것 입니다.


6월항쟁과 촛불혁명으로 다져진 시민의식은  충분히 살아잇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가 전 인구의 절반이 넘는 나라 입니다.

착하고 살고 있고, 정의감이 있는 시민들도 많은 나라입니다


오히려 우리 한반도는 종교적으로 아주 주목받는 곳이 될것 입니다.   

정의와 선행으로 택함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것이고,

자신의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하시는 분들도 많을것이고, 

진리와 정의를 위해 용감히 모든것을 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오실때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실천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19세기는, 지배계층의 폭정과 백성의 피폐함이 역사의 큰 흐름이지만

             서학운동과 동학운동을 가장 주목하고 있는것 처럼..  

20세기는, 일본의 강제 병합과 한국전쟁 (6.25) 분단체제가 역사의 큰 흐름이지만 

             6월 항쟁이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는 사건인것 처럼.. 

21세기는, 동아시아 대전쟁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지만

             그루터기 활동이 가장 눈여겨 볼 사건일 것입니다.

              ('한국전쟁', '동북아전쟁' 이 아니라 '동아시아대전쟁'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1세기 한반도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지구 전체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지역과 역사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루터기들 힘내십시다!!  기도 열심히 드리고 있습니다!!


================================================================


*** 덧붙여서...


오늘도 영성훈련 입니다


1) 첫번째, 자신만의 기도를 만들어 드리자.

   주님의 기도, 마니피캇, 모세의 기도 , 다니엘의 기도, 바울의 기도 등

   성경에는 아주 아름다운 기도들이 많습니다.

   또한 하느님 자비심 기도, 묵주 기도 , 예수님 수난 15기도, 성모통고 기도 등

   가톨릭에는 성도들이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시시때때로 드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자신만의 기도를 한번 만들어보는게 어떨까요?

   하느님에게 자신만의 기도를 만들어 드리십시요

   처음에는 생각보다 기도문 만드는게 쉽지 않을겁니다.

   짧게 화살기도 부터 시작하십시요.

    ' 예수님, 주님을 믿습니다 '

    ' 하느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

   자신만의 기도를 만들어 드리는 것, 신앙생활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2) 미사 드릴때, 자신을 봉헌하자

   이전 글에서 미사드릴때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자 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하느님의 성전으로서로서..

   자신을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을 성령님의 증거자로서..

   자신을 성모님의 아들로서..

   미사 때 자신을 봉헌하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오늘은 미사 드릴때 할수있는 좋은 습관 하나를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때 보통 우리의 소망을 말합니다. 

   미사 드릴때 소망 뿐만 아니라 기쁨, 슬픔, 행복, 괴로움, 분노, 절망..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 하십시요.

   미사 드리는 것은 성부 하느님께 직접 호소할수있는 기회이므로

   평소에 기도할때도 하지못했던 것을 말할수 있습니다.   

   저는 가끔 한숨소리를 미사때 드리기도 합니다. 

   영원하신 아버지 거룩하신 성부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인도하소서.   

    영원하신 아버지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성부 하느님, 우리 주님 다시 오실때까지

    저희들이 계속 미사드릴수 있도록 은혜 베푸소서. 


3)집에서 TV를 치워버리고, 성경책과 십자고상과 성모상을 놓자.

 이전글에서 말했는데요. 사실 저도 이것을 실현하지 못하고 잇습니다.

 왜냐하면 노모를 모시고 살고있는데, 어머니께서 TV를 즐겨보시기에..

 대신에 골방에 개인제대를 만들고 매일 성경읽고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식사할때 밥먹으면서 TV를 보게되거나, 가끔 외부식당에서 밥먹을 경우 

 TV켜져 있으면 밥먹으면서 요즘 먼소리하나? 볼때도 있지만 역시나 맘에 안듭니다.   

 세상 소식??  뭐.. 인터넷 하면서 내가 관심있는 것을 주로 봅니다.  mlb highlights 재미있어용~ 


 TV는 바보상자 라고 누가 말했는데요, 저에게는 거짓말상자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매스컴 (TV 방송, 신문 잡지) 을 싫어합니다.  울나라에는 언론이 없습니다.

 당연히 TV, 신문 중에 규칙적으로 보고 읽는것은 없습니다. 뉴스도 안봅니다. 

 언론이라면 당연히 사회정의를 설파해야 합니다. 권력이 잘못하면 지적해야 합니다.  

 울나라에 사회정의를 말하거나 권력의 잘못을 지적하는 TV, 신문이 있는지?

 오히려 권력에 기생하여 기득권을 누리며 살고싶어서 안달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옛날에 팔레스타인에 바알을 숭배하던 신전이 있었다고 하던데..  

 나에게 TV는 바알신전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멸망으로...    흠..  하늘에서 불벼락 떨어질듯??  

 K드라마,  K영화,  K팝, 아이돌, 걸그룹..  이런거 나에게는 머나먼나라 이야기 입니다.

 그러고보니 뭔 재미로 사는건지..  산행하고 사진찍는게 취미이긴 합니다.  사진 재미잇습니다.     


 신앙생활 (미사, 성경 읽고 묵상, 기도, 선행하고 희생드리는 것) 이

 즐거워지고 활기차게 하려면 역시나 성령님의 감동이 큰 도움이 되는것 같습니다.

 신앙생활도 생체리듬 사이클처럼.. 오르막 내리막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솔직히 영화, 게임, 오락 등등 세상의 쾌락이 인간의 오감(감각) 에 더 자극적이기에 

 신앙생활에도 강한 의지가 필요하기는 할것 같습니다.  

 결국 본인의 의지와 성령님의 감동 이군요. 

 물론 성령님의 감동에는 오감 (감각) 으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평화와 행복이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당신의 성령을 세상에 보내시기를 빕니다. 

     당신의 거룩하신 성령으로 인간을 감동시켜 주십시요. 

     초대 교회 때, 불같고 바람같은 성령 강림을 기억합니다. 

     지금, 여기에, 저희에게 성령 강림 하소서. 

     때가 왔나이다.  당신께서 직접 말씀하신 약속을 실행하소서.

     거룩하신 성령이여, 활동하소서 역사하소서.


4) 요한계시록 3장 19절 ~ 22절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


이 말씀을 한국의 가톨릭과 신자들에게 드립니다. 

움.. 주님께서 우리나라 가톨릭을 사랑하시는군요. 다행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든지, 무슨 행동을 하든지..  모든 것은 당신의 자유이고 선택입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마찬가지이고요.  부디 올바른, 좋은 선택을 하시기를 빕니다.


뭐.. 어렵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고민하실 것도 없고요. 

매일 미사 드리고, 매일 성경 말씀 읽고 묵상하고, 매일 하느님 자비심 기도와 묵주기도 하고,

세상에서 착하게 살고, 희생하고 보속하는 삶을 살고있다면 전혀 걱정하실것 없습니다. 

오히려 엄청난 은혜를 체험할수 있을 것입니다. 천사의 방문을 경험하실수도 있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미지근하게 하고있는 사람들, 예전엔 잘믿고 열심이었으나 이제는 냉담한 사람들,

신앙을 취미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 세상의 돈 출세 권력을 위해 양심을 버린 사람들.. 입니다

이 사람들은 가까운 시일내에 엄청난 선택의 기로에 설것 입니다.   

지금 자신의 신앙, 구원 문제에 대해 깊히 묵상해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권유합니다.

조만간, 정의가 실행되면 (요한계시록) 감당하기 힘든 격랑의 회오리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냥 이 세상에서 적당히 믿고 살다가, 저 세상에서도 구원받고 잘 지낼수있으면.. 

이런 선택이 있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우리 시대가 그런것을 허용치 않는군요.

솔직히 이런 이야기해도 나에게 좋을것은 없고요. 나자신이 혼자 있는것을 좋아하고

조용히 책읽고 사진 찍는것을 좋아하는 보통 사람인데..  파수군이라니.. 

주님께서 왜 이런 선택을 하신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난 단지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뿐입니다.  주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 일뿐입니다. 

파수군으로서의 소명을 다할뿐입니다. 솔직히 에제키엘서 보다는 제2이사야가 훨씬 더 좋았는뎅.

위의 인용문구 중 첫 귀절은 주님께서 직접 저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에게 칭찬이나 위로 받을때는 정말 좋지만, 책망이나 징계 당할때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것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 하게 될것 입니다.


    십자가 수난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 자비로우신 예수님.

    성자 하느님, 정의의 심판관이 아니라 자비의 왕으로서 저희들에게 임하소서.


먹고살기 바쁜것 인정합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쯤은 자신의 삶 인생에 대해 깊히 생각을 해보는것이 좋지 않을까요?

나는 왜 살고 있나? 죽음 이후는? 구원이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일까? 

크리스찬 뿐만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스스로에게 해봐야 하는 질문입니다.

보통 내가 올리는 글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그리스정교) 을

대상으로 합니다. 가끔 성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올리는 글들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 요번 문구는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 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삶과 죽음은? 하느님은 존재하는가? 구원이란? 

모든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질문입니다. 


유물론의 시각으로 나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로 이루어져 있는 단백질 생명체이고

죽음 이후는 나는 원자로 분해되어 다시 우주의 일부가 된다. 그러므로 살아있을때

그냥 행복하게 현재 그 순간만을 즐기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너무나 일면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현대 과학이 그렇게 말한다고요?  현대 과학은 지극히 발달하고 놀라운 세계관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한쪽만을 말하는 가치체계이기도 합니다. 오로지 삶과 물질과 육체와 자연과 우주 만을 설명합니다.

삶과 죽음, 물질과 영성, 육체와 영혼, 자연과 영적인 존재, 원자와 하느님.. 너무나 많은 대비가 됩니다.

저에게는 과학은 오로지 한쪽만을 말하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천사, 악마, 신 등등 과학이 설명하지 않는 영적 존재들을 만나는 내가 이상한 것일지도..


암튼 현대는 지극히 문명이 발달한 세계이지만 또한 지극히 이기적이고 오만한 문명이기도 합니다.

현대인들은 아주 건강하고 똑똑한 인류이지만, 아주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사악한 인류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문명의 폐해를 견뎌낼수 있을까요? 아니 인류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문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멸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기상변화 참 무섭습니다.

움냐.. 나는 신이 인간의 역사에 관계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니 아주 많이 다릅니다.

뭐.. 무엇을 선택하든 본인의 몫 입니다. 나는 그냥 다른 시각을 (신을 인정하는..) 말할 뿐입니다.


*그나저나 아래 말씀에 해당되는 신앙공동체는 몇이나 될수있을까요?

요한 계시록 3장 10절 ~13절

" 네가 인내하라는 나의 말을 지켰으니, 땅의 주민들을 시험하려고 

  온 세계에 시련이 닥쳐올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

  내가 곧 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승리하는 사람은 내 하느님 성전의 기둥으로 삼아 다시는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지구에서 이 말씀을 받을수있는 공동체가 얼마나 있을까요?? 

성부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한반도에 그루터기 공동체를 허락하소서. 


5) 그리고 한국 개신교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릴것입니다.

 울나라 개신교에 대해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휴.. 

 개신교는 정말 절실하게 깊이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천덕꾸러기 개신교야 철좀 들어라. 너희들이 얼마나 주님을 힘들게하는지 알고있느냐?  

 정말 말하기싫지만, 어쩔수없이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이건 나중에..

 

6) 

" 네가 어머니에 대해 알수록, 어머니께서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될것이다 "

예수님, 주님께서 제가 영세를 받고 얼마후에 직접 말씀하셨나이다.

맞습니다, 주님. 저는 성모님의 예수님을 향한 한없는 사랑과 희생을 깨닫게 되었나이다.

그런데 예수님, 저는 또한 주님께서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이시지만 성모님을 아들의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 성모님의 기도에 귀기울이소서.


공경받으실 성모님, 은총이 가득하시고 티없으시며 십자가 인호가 빛나시나이다. 

자애로우신 성모님, 저희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저희와 함께 걸으소서.


" 예수님, 성부 하느님의 정의와 징벌이 실행될때 저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

" 어머니, 저의 자비는 아버지의 정의 중에서도 활동할 것입니다 

  저의 자비를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세요 "

" 그래, 알았다 "



여기까지 읽으신 모든 분들에게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