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26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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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0-02 | 조회수382 | 추천수6 | 반대(0) |
주변을 보면 제복을 입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사는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런 의사에게 신뢰와 존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경찰도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경찰의 안내와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질서를 유지하고,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군인은 국가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입니다. 군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그들의 수고와 헌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방대원도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방대원의 차가 지나갈 때면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합니다. 소방대원들이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제복을 입고 있는 동안, 그 제복이 가지는 권위와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만일 제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사회의 질서와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면 더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사기를 친다면, 경찰이 모여서 도박을 한다면, 군인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면 더 큰 비난과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한 아이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신부님은 왜 사제복을 입으세요?’ 아이는 사제복에 있는 하얀 칼라가 궁금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별 뜻 없이 ‘그것이 법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신부님이 아이에게 영어로 사제복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클러지 칼라(clerical collar)라고 불리는 하얀 색 칼라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헌신과 순결: 하얀 색은 사제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자신의 삶을 봉헌하고 순결하게 살아가겠다는 서약을 상징합니다. 사제는 이 칼라를 통해 자신이 세속적인 생활과 구별된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사제의 정체성: 사제복의 하얀 칼라는 사제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들은 사람들 속에서 하느님의 종으로서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이로 구별됩니다. 하느님의 빛: 하얀 색은 성서적으로 하느님의 빛과 진리를 상징합니다. 사제는 이 칼라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과 진리를 세상에 전하는 역할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저도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사제복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입니다.(갈라 3 27 -28)"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모두 그리스도를 입었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합니다. 신앙인이라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보다 더 큰 비난과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는 존경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존경하지 않는다.” 간디의 눈에 그리스도를 입었다는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권위가 실추되고, 세례 받는 신앙인이 줄어드는 이유는 박해가 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빛을 잃어서도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입어야 하는 신앙인들이 세상의 질서와 세상의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제복을 입은 사제들이 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요청하셨습니다. 첫째는 열정입니다. 작은 물방울이 커다란 바위에 구멍을 냅니다. 불가능한 것 같지만 열정에 시간이 더해지면 이루어집니다. 돈도, 지팡이도, 조직도 열정이 없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도착한 프랑스 외방 전교회 사제들은 돈도, 지팡이도, 조직도 없이 머나먼 길을 떠나 조선에 도착했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박해와 순교가 있었지만, 한국교회는 순교자들의 피와 땀 위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둘째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눈이 먼 소경을 치유하실 때도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백인대장의 믿음과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이 세대가 믿음이 약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조건을 따지는 믿음은 계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아무런 조건이 없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진 건 풍랑이 거세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토마 사도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주님께서는 제게도 열정과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다면, 무기력하고 의욕이 사라진다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예수님께 열정과 믿음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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