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우리도 준비된 물음을 가졌는지 / 연중 제30주일 나해(마르 10,46ㄴ-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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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0-26 | 조회수8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우리도 준비된 물음을 가졌는지 / 연중 제30주일 나해(마르 10,46ㄴ-52) 하느님을 믿는 우리라지만, 우리 역시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믿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한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시각 장애인만큼 느끼는 이가 있을까? 그들은 얼마나 세상을 보고 싶어 했을까? 그들은 다른 이에게 온전히 의지해야 살 수 있는 무능하고 불쌍한 이일 게다. 눈이 멀쩡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축복에 대해 얼마나 감사드리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눈먼 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과연 어느 정도만큼 헤아리는지? 예수님께서 군중과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인 눈먼 거지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에, “다윗의 자손 예수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많은 이가 잠자코 있으라며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크게 “다윗의 자손이시여, 제게 자비를.” 하고 누구나 다 들어보라며 크게 외쳤다. 이는 마치 마지막 절규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그 외침은 확신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는 더 크게 부르짖는다. 이에 예수님께서 가던 길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게. 그분께서 부르시네.” 하고 말했다. 이 부름에 눈먼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단숨에 달려갔다. 예수님께서는 눈먼 거지에게 “지금 나에게 무엇을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스승님,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 하고 준비된 답을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라고 이르시니, 그 눈먼 이는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치유를 받은 바르티매오는 바로 그분을 따라 길을 나섰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렇다. 예리코의 그 눈먼 거지인 바르티매오의 이 절규는 단순한 부르짖음이 아닌 분명히 신앙 고백이다. 절박한 상황에서 부르짖는 그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신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는 이 간청은 비참한 내가 눈 뜰 수 있다는 믿음, 오직 예수님 당신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으시다는 신앙 고백이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렇게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그 믿음을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이다. 구원은 그에게 잠잠히 있으라고 꾸짖던 이들이 아닌, 예수님 길을 막고 메시아이심을 고백한 그 눈먼 거지에게 주어져다. 용기와 소신으로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매달린 눈먼 거지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도 적극적으로 주님께 나아가 우리 나약함을 드러내도록 기도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 상황에도 티매오의 아들처럼, 우리도 예수님 만남을 준비해야만 한다. 사실 우리도 애절한 그 무엇이 없을 수 없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을 것 같기에, 그분께 의지하지도 않고서 아예 포기한 믿음의 삶을 산다. 그러기에 우리도 바르티매오처럼 예수님께 나아가면서 의지해야만 한다. 이것이 믿음이다. 믿음의 길을 가야 하는 이 이유를 모르면 누구나 영적으로 눈먼 이다. 이 확신에 찬 우리 부름에 자비의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셔서 곧장 물으시리라.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우리는 정녕 무엇을 바라는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메시아이심을 믿는 우리도 그 눈먼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처럼 준비된 물음을 가져야만 한다. 이게 신앙인의 자세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바로 치유로 구원해 주시리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면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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