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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15:18 조회수23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 마태 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삶을 당신께 바치겠다고 한 그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와 사연 많은 눈물,

벗들의 따뜻한 눈빛,

순수했던 나의 가슴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강과 많은 산을 만났습니다.

일어섬과 넘어짐의 시간들.

그 안에는 늘 당신께서 계셨지요.

 

사랑 하나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당신께 내어드리는 것이

내 삶이어야 함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참 많이도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래도

당신께서는 곁에 있어주셨지요.

 

내 안의 너무 많은 것들 때문에

그저 당신을 뿌리치고 싶었던 날들.

그러함에도,

봉헌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시간들.

 

어제의 일만이 아닌,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싸워야 할 나와의 다툼입니다.

 

나 이상의 아픔을 가지고

언제나

내 곁에 계실 당신.

 

다시 일어서렵니다.

당신 종이 여기 있습니다.]

 

한 선배신부님께서 당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쓰신 반성과 참회, 다짐의 글입니다. 이 글에서 신부님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으로써 사제 서품식 때 가졌던 첫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지, 매순간 마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드리면서 그분의 뜻에 순명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계시지요. 문득 나 자신은 ‘봉헌’된 사람으로써의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반성하고 뉘우치게 됩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내어놓기 보다는 자기 이익을 챙기는데에만 몰두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성모님은 잉태되신 그 순간부터 당신 자신을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온전히 봉헌하는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 봉헌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먼저 성모님의 ‘자헌’(自獻)은 ‘성령의 감도’로 이루어 졌습니다. 자기 뜻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봉헌된 것입니다. 이는 계산된 기부나 봉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지요.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놓는 아름다운 봉헌입니다. 또한 성모님의 자헌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들 예수님이 그러셨듯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위한 도구로 바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 생애 동안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신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나 관계에 매여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내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자발적인 봉헌은 참된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마니피캇’의 도입부에서 이렇게 노래하시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의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 즉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는 말씀을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여 그분의 뜻을 오해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혈연관계로 묶인 가족마저 내치시는 차가운 분이라고, 그래서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과의 관계를 부정하신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미니의 존재를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성모님이 왜 당신의 ‘참 가족’인지 그 이유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단지 혈연관계로 묶여 있기 때문에 당신의 가족이 아니라,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자세로 어떤 시련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뜻을 충실히 실행하시는 분이기에 하느님의 참 가족이라는 것이지요.

 

그 원칙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우리가 단지 예수님을 입으로 ‘주님’이라고 고백한다고 해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그분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가족이라면 매 선택의 순간마다 기꺼이, 그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어야만, 그분의 자녀로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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