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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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23 | 조회수7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루카 20,27-40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가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을 던집니다. 모세가 정한 ‘수혼법’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그 형제가 죽은 이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맞아들여 형제의 후손이 끊기지 않고 유지되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만약 일곱 형제가 있는 집의 남자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죽은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고도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본인도 죽게 되면, 나중에 그들 모두가 부활했을 때 일곱 형제 모두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면 관계된 모든 이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해질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 원치 않으실 테니, 그런 점을 생각하면 부활은 없다고 여기는게 더 낫다는 것이지요. 죽은 이의 부활 자체를 못믿겠다는 거였으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이런저런 ‘인간적인’ 이유와 핑계를 들어 ‘부활은 없어야 한다’고 ‘부활이 없는 게 차라리 낫다’고 우기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께서도 참으로 난감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활에 대해서도, 그리고 자기들이 내세운 수혼법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습니다. 죽은 이의 아내를 그 형제가 맞아들이게 한 것은 그저 그 집안의 대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남편도 자식도 없는 상태에서는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청상과부’들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었음을, 즉 수혼법 자체가 그 사회의 작고 약한 이들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사랑과 선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몰랐던 겁니다. 그 율법에 담긴 근본정신이나 의미도 모르면서, 그것을 그저 글자 그대로 적용하기에 급급했던, 심지어는 자기들 이익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려 했던 편협하고 고집 센 모습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 같은 영적 가치들은 부족하고 약한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당신 사랑과 자비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두가이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사람들이니 당연히 하느님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이 세상 이후의 삶이 있다면, 그 내세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신경쓰여서 지금 이 세상에서 욕망하는 것들을 마음껏 소유하고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기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으로 남아계시길 바랐습니다. 하느님께서 자기들에게 축복을 베푸시어 큰 부와 권력을 누리게 해 주신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이 자기들 삶에 감놔라 배놔라 하시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부정한 것이고, 부활을 부정함으로써 자기 삶을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의 주도권을 부정한 것이며, 결국은 간접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마저 부정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지옥’을 택하는 어리석은 모습이지요.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분을 나와는 상관없는 저 먼 세상에 계신 분으로 오해하며 그분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려고 하지만,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런 하느님을 자기 삶과 세상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분 뜻을 따르는 이들만이 하느님과의 참된 일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을 살게 되지요. 그러니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 아무리 크게 느껴져도 그 유한하고 부족한 즐거움 때문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모조리 포기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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