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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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11-28 | 조회수58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루카 21,20-28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성적표가 나오는 날은 설렘과 긴장, 두 가지 기분이 공존하는 날이었습니다. 시험성적이 잘 나왔을 때에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부터 가볍습니다. 어깨를 한껏 으쓱거리며, 집에 가는 내내 ’부모님을 만나면 무엇을 사달라고 할까?’, ‘어떤 맛난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할까?’ 이런 생각들을 했지요. 그리고 제 성적표를 확인하신 부모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필요한데 쓰라고 용돈도 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나 시험성적이 영 신통치 않을 때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참 무겁습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부모님께 혼나지는 않을까?’, ‘맨날 놀기만 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나온 결과이니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실까?’ 이런 생각들로 어깨가 축 늘어집니다.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도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집 주위를 서성이다가 어렵게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런 두려움 속에 마주하는 부모님의 얼굴은 너무나도 무섭게 보였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은 단순히 성적이 떨어졌다고 화를 내시거나 혼내시는 분은 아니었지만, 제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 떄문에 마음 속에 두려움이 생겼고, 그 두려움이 부모님을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내면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바뀔 수 있으며,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세상 종말의 순간에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도 내 마음상태에 따라 무섭고 준엄한 ‘심판자’가 될 수도 있고, 한 없이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시는 ‘구원자’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평상시에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의 이중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매 순간마다 그분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고자 노력했다면, 그런 나의 마음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 그분께서 만들어가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할 것이고, 그런 내면상태로 만난 주님은 사랑 넘치는 ‘구원자’로 보일 것입니다. 반면에 평상시에 주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처럼 내 뜻대로만 살며 계명을 소홀히 여기고, 매사에 욕심을 부리며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왔다면, 그런 나의 마음은 주님께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할 것이고, 그런 내면상태로 만난 주님은 무서운 ‘심판자’로 보이겠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이 넘치는 참 좋은 분이십니다. 단지 그분을 맞이하는 우리의 준비가 부족하여 그분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종말’이란 내 삶의 결과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따라 받게되는 일종의 ‘성적표’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없습니다. 막연히 불안해한다면 우리에게는 ‘복음’도 기쁜 소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이비 종파들이 종말에 관하여 주장하는 잘못된 지식에 물들지 말고, 그저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을 위해 ‘현재’에 충실하게 살면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그분의 뜻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간다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두려움과 절망에 빠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우리가 아니라,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든 채"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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