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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유혹과 유혹에 넘어간 그 대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28 조회수44 추천수1 반대(0) 신고

 

어제 깊이 묵상한 주제가 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이 주제를 가지고 묵상을 많이 하긴 했는데 오늘은 어제 묵상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눔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보통 보면 다는 아니겠지만 이런 경우가 많이 있을 겁니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에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사고 기도 드리는 내용이 나옵니다. 빠지기 전에 신앙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서 이 유혹에 넘어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마음과 유혹에 넘어가고 싶다고까지는 아니지만 유혹에 빠지고 싶은 어처구니 없는 상태로 싸우고 있습니다. 누가 이기느냐에 따라 유혹에 빠지느냐 아니냐로 승패가 좌우됩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은 다 해보셨을 겁니다. 오늘은 유혹에 넘어갔을 때 그러니까 달리 표현하면 죄를 지었을 때 그때 그 상황을 한번 잘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평소 생각을 하는 신앙인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어떤 아쉬움이 남을 것 같습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조금만 참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실제 넘어가 어떤 죄에 빠지게 되면 한편 허탈하기도 합니다. 죄의 유혹은 혼자서 짓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사람이라는 건 남과 같이 어울리고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함께하기 때문에 짓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어 뒷담화 같은 경우입니다. 악의적인 경우가 아니라 정말 공동체에서 누가 봐도 뒷담화를 들을 수 있게끔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험담을 하려고 하는 의도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서로 한탄 아닌 한탄을 하다 보면 그 대상인 교우에 대해 뒷담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 동참하게 되면 성사를 보게 될 게 눈에 뻔하기 때문에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냥 침묵을 하게 되면 그 상황도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로 흐를 수 있습니다. 마치 고상한 신앙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자기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런 유혹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접하고 나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그냥 사람들과 교류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결코 좋은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이 나름 가장 현명한 방법이 될까를 묵상해봤습니다. 대화를 하긴 하되 그런 상황에서 그 상대방의 의견이나 말씀에 적절하게 응대를 하면서 그 말에 휘둘리지 않고 슬기롭게 잘 대처하는 대화의 기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를 잘 발휘해야 사람들과 교제를 하면서도 슬기롭게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유혹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유혹에 넘어간 그 대가는 무엇일까요? 성사를 보고 그에 합당한 보속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 다른 걸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여러 유혹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이런 뒷담화 같은 유혹이 설명하기 좋은 대표적인 사례인 것 같아서 이걸 예를 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유혹에 잘 넘어가고 또 반복하게 됩니다.

 

냉정하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대가라고 말하기까지는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대가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본다면 이와 같은 유혹에 넘어가기 전과 후를 비교해봤을 때 그에 대한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을 서로 비교하면 사실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런 경우 성사도 보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뭐 이게 대죄라고 의식하지도 않는 신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누구나 이런 건 하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성사를 보느냐 마느냐는 그 사람의 신앙과 양심에 맡겨야 할 문제입니다. 그건 그 사람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우리는 이런 점을 단순히 죄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려고 하는 문제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미련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잘 묵상하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런 걸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면도 있다는 걸 묵상해보는 것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거라서 한번 생각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 공유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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