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태현 신부님의 성서입문을 읽고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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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11-29 | 조회수5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목요일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을 읽는데 첫 도입부에 나오는 글이 오늘 글 제목입니다. 순간 이 부분을 읽으면서도 저의 머리는 두 개의 cpu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감동의 여운, 다른 하나는 신부님께서 보시는 책의 내용을 얼마전에 바오로 딸에서 구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나온 것도 봤는데 나중에 상하권 두 권이 완전 개정판으로 수정됐을 때 구입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각 성경 파트마다 집필목적과 전체적으로 신학적인 관점 등등 이런 게 성경 전체 각각 다 해설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성서주간이라서 정태현 신부님의 유튜브 영상이 몇 개 올라와서 봤습니다. 신부님의 이 영상을 봐서가 아니라 저번에 바오로 서간을 집중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성경의 각 복음사가가 하나의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서술했는지도 중요한 대목인 것 같았습니다. 4복음서도 공관복음과 요한복음 크게 이렇게 양분해서 큰 틀에서 보면 공관복음 전체를 요한복음과 비교하면 공통적인 점이 있지만 또 공관복음 세 개를 각각 보면 또 다른 관점이 있어서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도 좀 더 복음을 이해하는 데 한결 더 나은 점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요일 묵상을 읽으면서 이런 걸 생각해봤습니다. 신부님 정도의 그 이력이면 어쩌면 그냥 그런 정도의 책은 보시지 않아도 되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신앙 서적 외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시는 모습은 우리 일반 신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매일 같이 신부님께서 일정 분량의 글을 그만큼 작성하신다는 게 생각보다 아주 어렵습니다. 어쩌다가 한 번씩은 모르겠지만 그걸 매일 하신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땐 그런 내공은 바로 끊임없이 공부하시고 독서를 꾸준히 하시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밑천이 없으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매일 그 말이 그 말이고 식상한 표현만 되풀이 되는 게 보통 보면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걸 마치 구독자에 비유하면 구독자는 어느 정도 시점에서 식상하게 돼 더 이상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그와 같은 패턴에서 벗어나시는 것 같아서 평소 그런 부분은 존경하는 부분입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셔서 좋은 글 신자들이 많이 보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계속 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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