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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1-29 조회수57 추천수1 반대(0) 신고

 

안드레아 사도와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제자의 길로 들어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입니다. 이게 복음이니까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 소설이나 수필 같으면 이해가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글의 흐름이 조금은 어색합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어떤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쓰여진 게 아니고 구전을 통하여 그것도 몇 십년이나 지나서 췌록해 기록된 것이고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져 쓰인 것이라 복음사가 개인적인 성향과 더불어 그 사가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어 있기 때문에 마치 소설의 구성과 같은 편집을 생각해본다면 약간 묘사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 공간을 오늘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무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묵상을 할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표현을 한번 잘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호숫가에 있는 시몬 베드로와 동생 안드레아들 부르십니다. 앞으론 이 사람들의 운명도 이미 새로운 운명이 되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십니다.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말입니다. 그들이 응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묘사한 부분은 오늘 복음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물을 버리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상황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서 대비시켜 묵상하면 좀 더 실제적인 의미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마치 어느 주교님께서 강릉 바다 주변을 산책하시며 거니실다가 뱃사람 하나를 보시고 당신을 앞으로 내 비서로 일하게 하겠다고 하시니 네 하고 바로 주교님을 따라나서는 이런 상황과 마치 아주 흡사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신다면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 그냥 상식적인 생각에서 이와 같은 게 이루어진다면 일반적인 사람으로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럴까요?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집에 가족들과도 연락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상의를 한다든지 하는 그런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건 이해를 돕기 위한 하나의 가정입니다. 

 

2000년 전 상황으로 다시 되돌아가보겠습니다. 복음에 나온 상황만 가지고 묵상을 해본다면 그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그런 상황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은 어부였습니다. 어부에게 있어서 그물을 버린다는 것은 먹고 살 수 있는 생계수단의 도구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포기한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면을 보고 오늘을 사는 우리 신자가 이와 같은 것을 신앙의 롤모델로 삼는다는 생각으로 전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성당일을 하며 살아야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걸 알려준다고 해석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상황은 같지만 보는 각도를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이 복음을 들여다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달리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면 완전 올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든지 아니면 고기 잡는 어부가 되든지 둘 중 하나를 확실히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 낚는 어부도 되고 싶기도 하고 또 고기 잡는 어부도 되고 싶기도 하다면 이도저도 둘 다 다 아무것도 잡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이런 묵상을 바탕으로 해서 사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앞으로 예수님을 뒤따르는 제자로서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나머지 부분은 각자의 몫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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