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복음 : 백인대장의 인품 | |||
---|---|---|---|---|
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12-02 | 조회수9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의 인품을 한번 묵상해봤습니다. 복음의 순서대로 나타나는 모습을 대강 말씀드려보면 제일 먼저 측은지심과 같은 동정심, 겸손 이 두 가지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이 두 가지의 특성이 나타나는 말 몇 마디에 예수님께서 감탄하시며 하시는 말씀 또한 놀랍습니다. 대화의 길이만 놓고 판단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정도로 감탄하실 거라고는 생각하기 조금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워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점에 대해 한번 깊이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측은지심의 마음도 급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일단 사회구조 안에서 생기는 신분의 차이가 서로 상이한 점에 있습니다. 동급의 신분에서 일어나는 측은지심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부분도 먼저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측면도 있을 거라고 보여집니다. 측은지심도 지심이지만 단순히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게 아니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하는 표현으로 봐서는 육체적으로는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는 진심으로 같이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청을 했는데 그 다음 자세는 예수님께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시면서 집으로 가자고 청하시는 장면에서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먼저 자신은 예수님을 모실 자격이 없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사실 여기서 자격이라는 게 단순히 복음에서만 나오는 내용만으로는 분명하게 어떤 자격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묵상의 날개를 펼쳐보는 것입니다. 뒤에 이어지는 말씀과 함께 묵상을 해보면 가령 종의 집안 환경이라든지 그런 외적인 환경 때문에 그런 누추한 곳에 예수님을 모시기에는 좀 죄송하다는 그런 면에서 자격을 언급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간 풍문으로라든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서 예수님의 신적인 권능과 힘을 알았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왜냐하면 한 말씀만 해 주시면 자기 종이 나을 것이라고 하는 말로 봐서 그렇게 추론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봐도 예수님의 신성을 배제하고 이런 말을 한다고 해도 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더군다나 2000년 전 상황에서 말씀 한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믿음도 믿음이지만 그 믿음에 대한 확신도 그 속에는 엿볼 수 있습니다. 그냥 빈말이 아닌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 겁니다.
그와 함께 또 나오는 겸손이 있습니다. 자기의 상관과 밑에도 부하가 있다는 표현을 하며 자신이 처한 그런 신분의 위치에서도 밑에 사람에게 명령을 하면 명령대로 이행을 하기 때문에 자기와 같은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도 그렇게 하는데 예수님과 같은 분이시라면 더더욱 그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충분히 말씀만 하셔도 그 말씀의 효력이 있을 거라는 뜻이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대표적인 세 가지의 모습에서만이라도 예수님께서 충분히 놀라워하실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감동을 하신 부분은 다른 요소도 있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 같은 사람도 아니고 종의 위치에 있는 최고로 낮은, 자기와 하등의 관계가 없는 신분의 사람에까지 그와 같은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그점이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에 큰 감동을 일으킨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백인대장의 믿음에 감동하셨지만 그 믿음 근저에 백인대장의 순수한 인간애가 있었기에 그와 같은 측은지심도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믿음이라는 것도 단순히 어떤 신앙을 추구하기 위한 발로로서 생기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뿌리 내면에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애민의 마음도 중요하다는 걸 우리가 한번 묵상해 봐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