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복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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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12-03 | 조회수51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오늘 독서와 복음은 양대 산맥으로 구성돼 있는 듯합니다. 정의로운 판단과 판결은 어떻게 해서 나오는가 하는 주제로 함축시켜서 묵상하다 보면 새로운 묵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생활묵상 글 하나를 올리게 됐습니다. 그 글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다시 한 번 더 언급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자 합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을 듣고 싶어합니다. 인지상정입니다.
오늘 복음을 큰 틀에서 보면 지혜와 슬기가 충만한 자와 철부지를 대비시키고 또 보는 눈과 듣는 귀를 대비시켜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흥미롭습니다. 왜 당신께서는 성부 하느님께서 철부지 같은 사람들에게는 드러내시고, 지혜롭고 슬기를 가진 자들에게는 감추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슬기로운 자들에게 무엇을 드러내 가르치셔도 가르치셔야 하는 게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를 했을 때 수긍이 가는 대목이라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해가 안 될 때는 역발상을 하면 해답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과 복음은 누가 더 잘 이해를 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기서는 그냥 통상 우리가 말하는 일반적인 신앙과 복음을 말합니다. 지식이나 학문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좀 더 지적인 사람이 더 잘 이해를 하고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신앙과 믿음은 머리로 이해를 잘 한다고 해서만이 신앙이 훌륭한 신앙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지요? 저는 그럴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에는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좀 안다고 하는 자만이라든지 이런 교만이 자칫 신앙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이나 지혜가 필요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있으면서도 무엇인가를 받아들이려고 할 때 겸손한 자세로 잘 받아들인다면 그처럼 금상첨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지식과 지혜가 있으면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사람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군자와 같은 사람이 아니면 이걸 뭔가 과시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아니면 실제 의식을 하면서 남에게 가르쳐준다고 하는 형식을 취하려고 하는 교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감추어져 있다는 게 실제 숨기려고 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드러낸다고 해도 그걸 잘 받아들이고 하면 문제가 없을 텐데 오히려 조금 전에와 같은 그런 교만이 있게 되면 그 교만이란 것 때문에 진실된 복음의 가치를 자칫 잘못 볼 경우가 있고 그게 잘못 전달될 수가 있어서 어쩌면 그런 사람들에게는 숨겨질 수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한 가지 역으로 말해 왜 철부지에게 드러내실까 하는 점을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철부지에게 드러내면 공염불에 불과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철부지에게는 이런 장점이 있습니다.
흰색 도화지처럼 그 도화지에 뭔가 그리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준주성범에도 있습니다. 신앙은 어떤 면에서는 이와 같은 사람이 더 잘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때가 안 묻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좀 안다고 했을 때 마치 그 조금 아는 알량한 지식으로 남보다 좀 더 잘 안다고 해서 마치 하느님이나 예수님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오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신앙과 복음은 순수해야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순진하다는 말은 원래는 좋은 뜻이지만 이게 시대가 변화면서 좋은 뜻으로만 사용되는 게 아니고 부정적인 뜻으로 약간 변질된 면도 있습니다. 약간 멍청한 면이 있다는 것처럼 그런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 비추어보면 설령 요즘 세상에 그런 면이 있다고 해도 신앙과 복음은 그런 사람이 어쩌면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는 확신이 강합니다. 오늘 복음을 잘 묵상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을 이해해야 할지 그 해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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