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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 - 관상의 행복 “메시아와 평화의 왕국”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03 조회수9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4.12.3.화요일 성 하비에르 사제(1506-1552) 기념일       

 

이사11,1-10 루카10,21-24

 

관상의 행복

“메시아와 평화의 왕국”

 

“보라, 우리 주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시어,

 당신 종들의 눈을 밝혀 주시리라.”(복음 환호송)

 

오늘 옛 현자의 지혜도 관상의 행복을 누리는데 좋은 도움이 됩니다.

“마음이 흔들렸다면 한 걸음 물러서 자신을 바라보라. 그것만으로도 어지러움이 잦아질 것이다.”<다산>

“손괘의 상풀이에서 말했다. ‘산 아래에 못이 있는 것은 덜어냄이니 군자는 이를 통해 화를 누르고 욕심을 막는다.”<주역>

새삼 적절한 때 ‘물러남’과 ‘덜어냄’이 참 좋은 분별의 지혜이자 관상의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이사야서 11장 1절부터 10절까지 '메시아와 평화의 왕국'에 대한 이사야의 꿈과 희망, 비전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과 영감을 줍니다. 마침내 대림시기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시기 이런 평화의 왕국을 꿈꾸는 우리들이요, 오늘 이 말씀을 12월25일 성탄대축일 밤미사중 독서의 기도중 독서자는 노래합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통해 평화의 왕국이 바야흐로 시작됐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돋아난 햇순은, 그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은 바로 탄생하실 메시아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가톨릭교회는 여기 여섯에다 자비의 영을 덧붙여 성령의 일곱가지 은사라 칭하곤 합니다. 성령칠은으로 충만한 메시아 예수님이요 이어지는 고백도 고무적입니다.

 

“그는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이어 평화의 꿈이 완전히 실현된 유토피아 공동체 세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무수한 혁명의 예언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참 놀랍고 아름다운 예언같은 시詩입니다. 세상 어디서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글을 볼 수 있을런지요!

 

“늑대가 새끼 양과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넘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한 것이기 때문이다.”(이사11.6-9)

 

그대로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 꿈꿨던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받으실 때 세상 들짐승들과 누리던 평화로운 공존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성령의 인도하에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광야 세상의 들짐승들과 함께 평화를 누렸던 예수님이야 말로 영원한 평화의 모델입니다. 여기에 가장 근접한 프란치스코 성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르1,13)

 

바로 이런 지상 천국의 평화의 실현을 꿈꾸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하느님의 산 불암산 기슭에 자리잡은 여기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 공동체의 수도형제들입니다.  메시아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마침내 실현되기 시작한 하느님의 평화의 꿈입니다.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며 희구한 이사야 예언자요 그를 닮은 예수님인지요! 어제 나눴던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라는 감동적인 말씀도 떠오릅니다. 

 

오늘 복음은 선교 파견되었던 일흔 두제자의 성공적 귀환후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감격에 벅차 고백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대로 이사야 예언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관상의 행복을, 그 절정의 행복을 보여주는 주님의 감사찬미기도요 공관복음에서 유일합니다. 성령 안에서 아버지와 늘 일치되어 관상적 행복을 사셨던 삼위일체 하느님을 그대로 반영하는 예수님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를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천진무구(天眞無垢)한 철부지 제자들을 통해 대우(大愚)가 대지(大智)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십니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행복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들으려고 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이런 관상의 행복을 체험한 열정과 열망의 주님의 제자가 주님의 사도와 선교사로 파견되니 그대로 감사의 응답입니다. 바로 그 빛나는 모범이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예수회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입니다. 인도와 일본에 최초로 가톨릭을 전한 인도와 일본의 사도, 동양의 사도로 불리며, 성 바오로 사도에 버금가는 선교사로 손꼽히는 성인입니다. 그가 개종시킨 신자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는 성 이냐시오 로욜라 함께 예수회의 창립일원이 되었고, 인도 선교 활동차 1541년 4월7일 리스본을 출발하여 1542년 5월6일 인도 고아에 도착하여 1548년까지 인도반도 연안, 세일론섬, 말라카, 물루카제도에까지 정력적으로 포교 여행에 오르니 그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불가사의입니다. 이어 성인은 인도를 떠나 폭풍우를 뚫고 1549년 일본 선교활동에 오릅니다. 

 

그는 유럽에서 입는 사제복 대신 일본 승려들이 입는 납의와 가사를 입었는데, 이는 같은 예수회 선교사인 마태오 리치가 중국의 명나라에서 사제복대신 유학자의 도포를 입고 유교 교리에 맞추어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설명해가며 전도하려한 일종의 현지화 전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그의 기술을 통해 일본의 실상을 엿볼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대단히 예의가 바른 사람들인데, 잘 사는 것보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기를 무척 중요하게 여겨서 남자는 14세가 되면 항상 칼을 차고 다닙니다. 사무라이는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무기를 항상 갖고 다니며, 다이묘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선비와 붓의 나라인 평화의 조선과 사무라이와 칼의 나라인 전쟁을 좋아하는 일본과의 대비가 너무 극명합니다. 일본은 영원히 경계해야할 이웃이자 적국임을 잊어선 안될 것이니 유구한 역사중 양국의 관계가 이를 증명합니다. 지칠줄 모르는 선교 열정을 지닌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1년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해 출발했지만 진입하지 못하고 광동항 앞의 상천도(上川島) 외딴 섬의 한 천막에서 1552년 12월20일밤 열병으로 쓰러진후 객사하니 향년 46세입니다. 

 

불꽃같은 생애로 하느님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 온힘을 다해 노력한 불굴의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622년 시성되며, 1927년 비오 11세 교황은 성인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평화의 꿈을 실현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의 주님 평화의 사도로 살게 하십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시편72,7ㄴㄷ).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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