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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저 군중이 가엽구나.”(마태 15,32)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04 조회수68 추천수3 반대(0) 신고

* 오늘의 말씀(12/4) : 대림 제1주간 수요일

* 제1독서 : 이사 25, 6-10ㄱ

* 복음 : 마태 15, 29-37

29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옮겨 가셨다. 그리고 산에 오르시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으셨다. 30 그러자 많은 군중이 다리저는 이들과 눈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왔다. 그들을 그분 발치에 데려다 놓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31 그리하여 말못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3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33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일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시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36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3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 <오늘의 강론>

“대림시기”는 자신의 ‘간절한 갈망’과 마주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프고 어두웠던 암흑의 군사독재 시절에 ‘김지하’ 시인은 그 간절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메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금관의 예수)

오늘 <복음>에는 ‘간절한 갈망’으로 목마른 이들, 곧 “군중이 다리 저는 이들과 눈 먼 이들과 다른 불구자들과 말 못하는 이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예수님께 다가왔습니다.”(마태 15,30 참조).

이들은 자신의 갈망을 품고, 더러는 스스로 올라오지도 못해 이끌려와 예수님의 다가왔지만,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 안에 당신의 빛을 불어 넣으십니다.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고쳐주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 속 깊은 곳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못 다한 말도 다 들으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시어 이르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마태 15,32)

군중은 치유는 받았지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치유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맞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줄 뿐만 아니라 여관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드리겠습니다.”(루카 10,35)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깊고 깊은 ‘사랑의 신비’를 깊이 새겨야 할 일입니다.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먹이시고, 미처 바라지도 못했는데도 이미 용서하시고, 뒷날까지도 가엷게 여기시는 그 저린 마음의 사랑을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오히려 “이 광야에서 이렇게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을 만한 빵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하고 걱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곱 개가 있고 물고기도 조금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태 15,34-35)

그렇습니다. “빵”‘이미’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사실’, 곧 우리 가운데 빵이 있다는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일깨워주시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빵 “일곱 개” 완전함의 숫자요, 거기에 더하여 ‘물고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것은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도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찰”(마태 15,37) 정도였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진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알고’있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를 ‘찾는 사람’, 곧 “참된 빵”이신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진정한 순례자요 대림의 길을 걷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있지만, 방황하는 이가 아니라 ‘이미 찾은’, ‘이미 와 있는’ 빛을 따라 길을 걷는 순례자로서,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멘. 

 

“저 군중이 가엽구나.”(마태 15,32)

주님!

당신은 속 깊은 곳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말마저도 다 들으시니,

제 안에 당신이 새겨준 가엾이 보는 마음을 드러내시어,

제 마음이 당신 마음 되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약한 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게 하소서.

제가 당신 마음에 들게 하시고, 당신의 기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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