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1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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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2-05 | 조회수172 | 추천수8 | 반대(1) |
포트워스 신부님, 안식년 중인 동창 신부님과 엘파소엘 다녀왔습니다. 10시 15분 비행기였는데 기상 악화로 2시간 지연되었습니다. 덕분에 공항에서 걸을 수 있었고, 음악회 프로그램에 들어갈 인사말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늦는 것도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엘파소의 명소인 ‘화이트 샌드’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2시간 늦었기에 화이트 샌드에서 석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늦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사제관에 도착하니 교우분들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엘파소는 주일에 30명 정도 나오는 공동체입니다. 15가정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제가 있는 달라스는 주일에 800명 정도 나오는 본당입니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하느님의 축복과 하느님의 사랑은 같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공동체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공동체의 믿음에 따라서 주어집니다. 공동체가 믿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사랑으로 서로 나누며, 희망으로 기쁘게 살아간다면 그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2박3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형제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예전에 ‘시골 쥐와 서울 쥐’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시골에서 평화롭게 살던 시골 쥐는 어느 날 친구인 서울 쥐를 초대합니다. 시골 쥐는 자신이 먹는 소박한 음식을 서울 쥐에게 대접합니다. 하지만 서울 쥐는 음식을 보며 비웃으며 말합니다. ‘이런 초라한 음식을 먹고 산다니, 내게 오면 훨씬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서울 쥐는 시골 쥐를 도시로 초대합니다. 도시에는 화려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지만, 문제는 위험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던 두 쥐는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나 도망쳐야 했고, 사람들에게도 쫓기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시골 쥐는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위험천만한 삶을 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보다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내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면서 기쁘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화려함은 겉보기에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안전과 평화를 희생한다면 그 가치는 줄어듭니다. 꼭 남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진정한 만족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부유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대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어느 곳에서도 위로와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어느 곳에서도 불평과 불만이 넘쳐날 겁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날에는 귀먹은 이들도 책에 적힌 말을 듣고, 눈먼 이들의 눈도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보게 되리라. 겸손한 이들은 주님 안에서 기쁨에 기쁨을 더하고, 사람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 안에서 즐거워하리라.” 저는 그날이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기도 했고, 그래서 떠나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날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언제나 기뻐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은 늘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불평하고, 지금 원망하고, 지금 비관하면 언제나 제가 머무르는 곳은 가시방석입니다. 그러나 지금 감사하고, 지금 기뻐하고, 지금 기도하면 제가 머무르는 곳은 언제나 꽃자리입니다. 넉넉한 마음과 진중한 마음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신부님들에게 그날은 늘 ‘꽃자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눈이 먼 소경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소경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소경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신다는 예수님의 소문입니다. 아픈 이를 치유해 주신다는 소문입니다. 죄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신다는 소문입니다. 그래서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소경은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눈이 먼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갈망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눈이 멀었을지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보았던 소경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감사할 수 있다면, 기뻐할 수 있다면, 기도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영적인 마음을 환하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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