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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묵상 : 우원식 국회의장의 태도에서 배울 점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05 조회수98 추천수4 반대(2) 신고

 

정치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의 행정 최고 수반이 지금과 같은 시대에 계엄을 선포해 국가를 비상사태로 몰아가 위험으로 몰고가는 안타까운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가적인 불행이 일어날지도 모를 그런 천만위험한 일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런 비상사태에서 원칙적으로는 헌법을 준수하는 측면에서 봤을 때 계엄법 하에서도 계엄군은 입법기관은 통제를 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을 위반한 사태에 이르도록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을 겁니다. 이런 급박한 상태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처신한 태도에서 우리가 세상일이지만 한번 묵상해 볼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먼저 이와 관련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영웅도 무조건 시대가 만들지 않습니다. 영웅이 될 시대가 있다고 해도 영웅이 될 자질을 만들지 않으면 아무리 시대가 받쳐준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처음에 이 상황이 발생했을 때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소집돼 의결을 준비하고 있을 때 초긴급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 지연되는 우유부단한 모습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건 실제 사정을 모르고 유포된 사실이었습니다. 뉴스나 다른 유튜브와 같은 곳에서 소식이 나갔겠지만 일단 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요건이 결여된 상태로 계엄이 선포됐기 때문에 나중에 법적으로 따져보겠지만 이런 사실을 안 국회의장으로서는 국회의 수장으로서 자신 또한 시간이 급박한 시점이라고 해도 국회의 절차를 위반해서 표결을 붙이는 것 또한 나중에 절차상의 법적인 하자를 문제삼을 수 있는 우려를 사전에 방지하고자 그런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점도 현명한 대처였다고 칭찬해드릴 부분이지만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국민들이 봤을 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차분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놀라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의장의 짧은 인터뷰 장면에 나온 말씀을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사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또한 지금까지 45년 만에 발생한 계엄령이었고 지금은 시대가 시대인 만큼 계엄이 발생할 그런 시대가 아니다라는 건 정치를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의장이 됐을 때 혹시 모를,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계엄령이 발효된다고 하면 물론 일어날 확률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럴 경우를 대비해 평소 만약 그 상황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관련 법과 그에 따른 대처 방안을 숙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단순히 이런 걸 숙지하고 있었다고 해서 잘 대처했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숙지라는 말은 단순히 아는 것과는 구분되는 말이지만 숙지를 하려면 단순히 아는 차원을 벗어나 그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일어날 경우의 수를 모두 가정해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될지와 또한 생각지도 못할 변수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상정해 그런 것까지 다 고려해 숙지를 하지 않으면 이틀 전과 같은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대처를 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짧은 인터뷰 기사를 보고 묵상한 게 있습니다. 우리는 사순이나 대림, 언제든지 복음에서 늘 깨어 있어라고 하는 말씀을 보면 지금도 대림시기를 보내면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진정 깨어 있는 게 무엇인지 이런 일련의 모습을 바로 신앙에 접목해보면 '깨어 있다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단 하나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 정치인을 사례로 든 것이지만 우리가 이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극히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일어날 수 있다는 그런 가정을 생각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우리는 종말의 시점에 있게 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냥 형식적인 준비로 그치는 게 다반사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까? 항상 전례상 의례적으로 하는 기도문이기에 현실적으로 재림이 도래된다는 사실이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실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실에도 정말 진정으로 깨어 있는 신앙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보기엔 잠자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눈에는 잘 드러나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앙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제로는 잠자고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역설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외부적인 행동에 있어서 그 행동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어리석은 생각일 수 있습니다. 그런 행동은 겉으로 포장된 위장된 깨어 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깨어 있음은 지금 예수님께서 재림 아니 자기 당대에 설령 오시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 당대에 오실 것처럼 생각해 그걸 늘 의식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깨어 있는 신앙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한다고 해서 제가 그럼 깨어 있는 신앙인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지 않지만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진정한 신앙인이지지 않겠느냐 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비록 지금은 잠자고 있는 신앙인일지라도 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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