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어둠 속에 있음을 인정하고 고백해야만 빛을 얻게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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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06 | 조회수52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그곳을 떠나 길을 가시는데 눈먼 사람 둘이
따라오면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자
그 눈먼 이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예, 주님!’ 하고 대답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며 이르셨다.
‘너희가 믿는 대로 되어라.’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이 일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하고 단단히 이르셨다. 그러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그 지방에 두루 퍼뜨렸다(마태 9,27-31).”
1)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빛’이신 분”이라는 증언입니다.
대림 시기는 내 안의 어둠이 무엇인지를,
또는 나를 억압하고 있는 어둠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회개하면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잘 맞아들이고,
그래서 어둠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여기서 ‘눈먼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어둠 속에서
살던 인간들을 상징하고,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고쳐 주신 일은,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인간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채로
방황하는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인간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빛이 너희 가운데에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걸어가거라. 그래서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이 너희 곁에 있는 동안에 그 빛을 믿어,
빛의 자녀가 되어라(요한 12,35-36).”
2) 요한복음 9장에 있는,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신 이야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
저 사람입니까, 그의 부모입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우리는
낮 동안에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에는
아무도 일하지 못한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그에게
이르셨다. ‘실로암’은 ‘파견된 이’ 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가 가서 씻고 앞을 보게 되어 돌아왔다(요한 9,1-7).”
<이 이야기에 나오는 ‘눈먼 사람’은 예수님을 몰랐고,
몰랐으니까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었고, 믿음이 없었으니
예수님께 간청하지도 않았습니다(요한 9,36).
따라서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눈을 고쳐 주신 일은,
그의 믿음을 보고 하신 일이 아니라, 그냥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입니다.
눈먼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눈을 뜬 다음,
그리고 눈을 뜨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입니다(요한 9,38).
먼저 믿고 간청해야만 은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자비와 은총이 먼저 있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믿음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3)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의 끝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몇몇 바리사이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39-41)”
산상 설교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마태 6,22-23)”
자기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빛을 찾게
되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4) 그러나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빛을 찾지 않고, 그냥 어둠 속에서 살아갑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다. 나에게는 죄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누군가가
그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면, 화부터 냅니다.
회개는 죄인이 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이 회개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복음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입니다(마태 4,17).
그 선포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하신 선포입니다.
<‘모든 사람’이 전부 다 회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가 없으니 회개할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이고,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메시아의 나라에,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대림 제1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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