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위로자이며 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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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07 | 조회수10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12.7.토요일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340-397) 기념일
이사30,19-21.23-26 마태9,35-10,1.6-8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 <위로자이며 스승이요 치유자이신 연민의 하느님>
"주님을 기다리는 이는 모두 행복하여라!"(이사30,18)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하느님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우리에게 주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하느님을 찾는 인간의 본질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
참으로 가까이 계시어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의 부르심에 응답하시는 위로자 하느님이심을 천명하십니다. 이어 위로자이자 동시에 스승이신 주님이심을 밝히십니다.
“너의 스승이신 그분께서는 더 이상 숨어 계시지 않으리니, 너희 눈이 너희의 스승을 뵙게 되리라. 그리고 너희가 오른쪽으로 돌거나 왼쪽으로 돌 때, 뒤에서 ‘이것이 바른 길이니 이리로 가거라.’하시는 말씀을, 너희 귀로 듣게 되리라.”
스승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셔도 우리 마음의 귀가 닫혀 있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이 스승이신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을까 생각하면 순전히 우리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침묵중에 깨어 경청하는 자세가 얼마나 본질적 영적자세인지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우리 삶의 모두가 하느님의 은혜임을, 하느님은 우리를 보살피시는 분이자 치유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분께서 너희가 밭에 뿌린 씨앗을 위하여 비를 내리시니, 밭에서 나는 곡식이 여물고 기름지리라. 그날에 너희의 가축은 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밭일을 하는 소와 나귀는, 삽과 거름으로 까불러, 간을 맞춘 사료를 먹으리라...또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상처를 싸매 주시고, 당신의 매를 맞아 터진 곳을 낫게 해 주시는 날, 달빛은 햇빛처럼 되고, 햇빛은 일곱 배나 밝아져, 이레 동안의 빛을 한데 모은 듯하리라.”
얼마나 부지런히 우리를 살리시고 치유해주시는 치유자 하느님이신지 감동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말해 언제나 우리를 위로하시고 가르치시고 살게 하시고 치유하시는 연민의 하느님이라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대림시기는 오시는 메시아 예수님을 통해 이런 하느님을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새로 임명된 교황청의 설교가 파솔리니 신부의 대림 첫 강론은 주제는 “하느님의 새로움의 기적에 우리 마음을 열라(Open our hearts to wonder of God’s newness)”였습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가르치시고 살리시고 치유하시는 연민의 하느님의 늘 새로운 기적에 활짝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이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 그대로 실현됩니다.
주님은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시며 전방위적으로 활약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인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수확할 밭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 청하라 하시고 당신 친히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그들을 당신 능력으로 충전시킨후 파견하십니다. 예나 이제나 주님의 위로와 치유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허약하고 병든 사람들입니다.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1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2.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며, 3.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해주고, 4.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져 받았느니 거져 주어라.”
당대의 예수님 열두제자들은 물론 오늘 믿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사명입니다. 예나 이제나 똑같은 인간들의 불행한 현실입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정말 문제투성이, 무지의 인간에 대한 답은 주님과의 일치뿐이 없습니다. 주님을 떠남으로 자초한 온갖 죄와 병이요 불행에 비극입니다. 참으로 주님과의 일치로 영혼의 치유와 건강이 절박한 시절입니다.
제 아무리 첨단 문명의 인공지능 시대라 하지만 인간의 가련하고 불쌍하고 병든 무지의 현실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아니 인간의 정신력은 영성은 날로 깊어지고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고갈되는 지구의 자원과 더불어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탐욕과 야만의 총체적 위기시대입니다. 언제나 인간이 문제입니다. 해방 80년이 되가는데 우리의 정치현실은 좌우의 극단적 대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인간성의, 영성의 진보가 참 미미해보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은 단 하나, 주님을 철저히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암브로시오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성인은 340년경 현재 독일의 트리어에서 태어났으며,그의 아버지는 갈리아 지방 로마 제국 출신 장관이었습니다. 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성 대 교황 그레고리오 더불어 서방의 사대교부에 속합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암브로시오 이름뜻은 ‘불멸’을 뜻합니다. 태어날 때 꿀벌들이 날아와 그의 입술을 지식의 단물로 축였다고 전해오며 이런 은총으로 후세에 뛰어난 설교자로 추앙받게 됩니다. 374년 11월30일 세례를 받고 일주일후 주교로 임명되며 오래지 않아 당대의 유명한 설교가가 됩니다.
“나눔은 자선이 아니라 정의의 실천”이라는 신념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사회선교에도 충실했으며 서방교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성직자가 됩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들 매일같이 그의 들으려고 찾아왔으며, 그는 겸손한 태도로 열심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증언입니다.
“그는 방문자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에는(아주 짧은 시간뿐이었습니다), 꼭 필요한 요기로 몸을 돌보거나 독서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가 책을 읽을 때에도 눈은 책갈피를 더듬어 나가고 마음은 터득한 바를 되씹고 있었지만, 목소리와 혀는 쉬고 있었습니다.
가끔 저희가 그를 찾아갔는데 누구든지 들어가지 못하게 금하는 법도 없었고, 또 누가 찾아왔다고 자기에게 알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소리없이 책을 묵독하고 있음을 보았고, 그럴 때면 저희도 하릴없이 소리 내지 않고 한참동안 말없이 그냥 앉아 있다가 가만히 자리를 뜨곤 하였습니다. 그처럼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누가 번거로움을 끼칠 엄두가 나겠습니까?
제 고민을 그에게 털어놓기로 하자면 그가 무척 한가했어야 하는데 그가 그런 여유가 있는 경우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백성 가운데서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그의 말씀을 주일마다 들을 뿐이었습니다.”<고백록, 성염역주,203-204쪽)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내용이라 자주 인용하는 부분입니다. 그와 황제와의 대립시 승리일화도 유명합니다. 390년 테살로니카 주민들의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한 책임을 물어 테오드시우스 1세 황제에게 회개를 명했고, 그가 주교에게 항복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받았을 때 성찬례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후 보편적인 교회의 권위가 황제의 권위보다 더 빛나게 됩니다. 이를 상징하는 듯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4권’은 ‘그리스도의 승리’라는 책 제목에 최초로 표지 사진은 황제가 아닌 ‘성 암브로시오' 사진이 나옵니다. 397년 4월4일 향년 57세로 선종할 때 성인의 임종어도 감동적입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어찌 이리 많이 남았다는 말인가! 오, 주여! 어서 빨리 오소서! 지체하시지 마시고 저를 거절하지 마옵소서.”
얼마나 고단한 분투의 노력을 다한 삶이었는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저는 이룬 일도 없이 부끄럽게 성인보다 무려 18년을 살고 있다는 자각이 더욱 분발하게 합니다.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주님을 닮아 우리 모두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는" 무욕의 초연한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시편1,2-3).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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