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조연은 역시 조연다워야 / 대림 제2주일 다해(루카 3,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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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12-07 | 조회수5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조연은 역시 조연다워야 / 대림 제2주일 다해(루카 3,1-6)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한국 교회가 정한 인권 주일이고 사회 교리 주간의 시작이다. 인류를 구원하시러 오시는 예수님의 뜻을 기다리며,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도록 기도하자. 또한 사회를 보는 올바른 눈을 가지게 하는 사회 교리를 배우고 익혀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고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하자. 인간 존중과 인권 신장은 복음의 요구다. 그럼에도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교회는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보살펴야 한다. 오늘날 많은 도전에 대응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일깨우려는 것이다. 또한 이 기간은 사회교리 주간이다. 이는 새로운 방식의 사회 교리를 여러 신자들에게 깨우치게 하려는 것이다.
꽃 가운데 그나마 장미가 아름답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에게 장미를 선물하곤 한다. 그런데 이 다발에는 대개 안개꽃이 장미를 감싼다. 하얀 안개꽃에 쌓인 빨간 장미의 아름다움은 돋보인다. 이 작고 흰 안개꽃은 하나하나만 보면 그리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장미를 돋보이게 하는 건 사실이다. 따라서 안개꽃 없는 장미는 덜 아름다우리라.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관계도 이와 다를 바 없자. 요한은 예수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고 자신은 서서히 사라졌다. 요한 자신은 지는 해인지라, 예수님을 떠오르는 해로 여겨 그분께 선구자 역할을 다 한 뒤 조용히 물러났다. 그야말로 그분만을 돋보이게 하고, 자신은 그분을 드러내는 배경인 ‘안개꽃 역할’만 했다. 정녕 요한의 아름다움은 거기에 있었다. 누구나 조연보다 주연이 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리라. 그런데 주위에는 안개꽃처럼 다른 이의 배경이 되어 주는 이가 쾌나 있다. 나서지 않으면서 남들을 묵묵히 떠받쳐 주는 이, 그 옛날 요르단 강 가의 세례자 요한 같은 이 이다. 우리도 주님 영광 드러내는 데 기꺼이 요한 마냥 안개꽃 같은 이가 되어야만 한다. 조연이 조연다울 때 그 드라마는 ‘찐한 감동’을 주리라. 하느님 영광 드러내는 데는 이 안개꽃이면 충분할게다. 이렇게 예수님보다 먼저 온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부근을 두루 다니며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다. ‘요르단’이란 ‘내려간다.’ 라는 뜻이란다. 그는 하느님의 그 높디높은 뜻을 그들에게 이곳저곳 다니면서 내려다 주었다. 하느님의 뜻이란 당신 피조물이 회개하여 당신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일 게다. 그러한 삶으로 단순히 인간의 품위가, 창조 모습 꼭 그대로 회복되기만을 간절히 바랐으리라. 요르단 강가에서 그들 백성에게 세례를 준 요한은 예수님에게 분명히 구약을 마무리하면서 신약으로 아름다움을 인계를 해 주고는 안개처럼 사라졌다. 조연은 주연을 마다하고 이처럼 조연일 때가 더 빛난다. 요한은 그분 영광을 드러내는 데, 안개꽃과 같은 역할을 다하고는 구약의 시대로 사라졌다. 단지 아름다움만 가득 남기고 그저 그렇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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