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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일 : 우리도 하느님으로부터 탄핵이 되지 않으려면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08 조회수78 추천수2 반대(0) 신고

 

지금 우리나라는 대혼란과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목격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국민들이 양쪽으로 나누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찬성이냐 반대이냐 하는 진영 논리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찬반 양 진영으로 나누어질 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자유도 있습니다. 자기의 목소리를 내긴 하되 지금과 같은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에서는 자기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국가라는 거국적인 거대 이익을 위한 개념으로 자기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서 최후의 심판이 묵상되었습니다. 갑자기 난데없이 최후의 심판이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지금 대통령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일단 유보됐지만 신자인 저에게는 물론 정치판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대통령이라는 권한은 국민이 부여한 권리이지만 외적인 모습에서는 국민보다도 더 위에 있는, 위치적으로는 막강한 권좌에 앉아 있지만, 국민이 위임한 그 권한도 국민을 위해서 사용할 때만이, 그 권한도 그 권한에 맞는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게 잘못 됐을 땐 그 권한도 박탈시킬 수 있는 게 전세계적으로 대통령제를 취하는 모든 국가가 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전례적으로는 대림을 보내고 있고 또 이번 주간은 사회 교리 주간입니다. 우리는 교리라는 게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가 믿는 신앙 교리도 중요하지만 사회 교리 또한 중요합니다. 지금 교황님은 앞으로 지금 현재 교리에서 생태에 관한 교리를 추가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교황청 내에서 나온 소식을 봤습니다. 한마디로 생태를 파괴하는 것도 인류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심각한 죄라고 하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실정법에서 이와 같은 개념을 그 어떤 국가도 이런 개념을 가진 나라는 없었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지구환경을 보호하자는 측면에서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게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차원의 권고 수준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아마도 이와 같은 개념이 전세계 모든 나라에 개념이 확산되고 보급되면 마치 생태파괴범죄 형태의 새로운 실정법이 규정돼 실제 실정법 위반으로 규정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범위를 좁혀 보게 된다면 이런 개념을 도입하는 곳은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도 생각지도 못한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가톨릭에서만 사회 교리라는 개념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은 가톨릭의 우수한 면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탄핵 정국도 이런 개념에서 봤을 때 우리의 신앙에 접목해 보니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신부님과 같은 분은 사제라는 신분으로,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으시고 성무를 집행하십니다.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품성사로 수도자이면서 사제의 길을 부여받았습니다. 우리도 또한 세례를 통해서, 평신도이지만 평신도도 평신도로서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도 대통령이라는 신분이 국민이 권한을 부여한 것처럼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도 국민의 역할과도 같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직책입니다. 직책이 있다면 그 직책에 맞는 권한도 부여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이런 정치 현실을 보면서 우리도 마치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그런 소명의 길을 잘 걸어가지 못하게 되면 그에 합당한 심판을 하실 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판이라는 게 꼭 무서운 그런 심판의 개념과 같은 심판도 심판이겠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아무리 무한한 자비라고는 하지만 그 자비가 그렇다고 모든 영역까지 무한한 자비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논리라면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은 빈말로 전락하게 되고 또 필요조차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진정으로 회개하는 진정한 통회의 길을 걸을 때, 그것도 정상참작이 될 것이지 모든 경우에 다 그렇게 적용된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할 하등의 이유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이에 대해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어렴풋이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매일미사 오늘 전례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사회 교리를 배우고 시대의 징표를 식별해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하는 내용처럼, 복음은 마치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그 울부짓음이 우리의 귀에도 들려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이 굽은 길이면 곧아져야 되고 또 거친 길이라면 평탄한 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됐을 때만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복음은 마무리합니다. 

 

그렇다면 그 굽은 길이 어떤 길이고 또 거친 길은 어떤 길이겠습니까? 간명하게 표현하면, 굽은 길은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그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될 것입닏. 거친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시는 것도 우리가 이런 길을 가려고 노력할 때만이 내밀어주시는 것이지, 그냥 어디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듯이 무상으로 거저 내려주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은총이면 그 은총이 어디 가치가 있는 은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짧은 몇 줄로 요약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어도 세상에서 돌아가는 일을 보고도 시대의 준엄한 현실이 있으면, 신앙인은 이런 시대의 징표도 식별을 할 수 있는 식견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우리는 요한 사도가 외친 회개의 삶을 살 수 있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 각자에게 부여된 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신부님과 같은 분은 성직자의 길이고 수도자는 수도자의 길이 될 것이고 우리 같은 평신도는 평신도로서 복음의 말씀을 실천하며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도 이 주어진 길을 제대로 걸어가지 못하면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정치 현실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거두어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지금 정치판에서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그 권한을 회수하려고 하는 탄핵 정국을 보면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신앙과 믿음을 지켜야 할지 진지하게 묵상해봐야 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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