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영억 신부님_나를 기다리고 계신 하느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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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08 | 조회수43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대림 제2주일입니다. 대림 초 두개에 불이 당겨졌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 만큼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주님의 빛이 환히 비춰지길 희망하며 기쁨의 성탄으로 한 발 더 내딛기를 빕니다.
피아노 조율은 언제 해야 합니까? 피아노 조율은 ‘연주가 끝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연주 앞에서 조율’을 합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산 다음에 후회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삶을 조율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함부로 헛되이 삽니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여정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나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상적인 마음가짐에서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는데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들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보리라” 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곧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보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의 양식을 바꾸고 하느님께로 향한다는 것은 분명 광야에 길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 보따리를 바꾼다는 것은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단호한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남의 잘못은 잘 보지만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는 연약함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결국 돌이킬 마음도 없게 됩니다. 사실 고해성사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은 고백할 것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며 외모를 단장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비춰봐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한번 살펴보십시오. 우리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골이 나 있는 것은 없는지? 혹 골이 있다면 그 골을 메워야 합니다. 서로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와 다른 그를 ‘나와 틀리다’ 고 단죄하며 거리를 둘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골짜기는 메워져야 합니다. 산과 언덕들도 낮아져야 합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 교만함이 있었다면 겸손함으로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내려오신 그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던 그 모습으로, 간음한 여인의 처지로 내려가서 허리를 굽혀 땅 바닥에 무엇인가 쓰시던 그 예수님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굽은 데는 곧아져야 합니다. 마음이 굽으면 모든 사람과 사물이 다 굽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굽으면 모든 사람과 사물이 다 굽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굽은 마음을 곧게 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보면 증오와 저주를 낳게 되고 영혼이 망가집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고, 인정해 주는 올곧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거친 길은 평탄케 해야 합니다. 거친 마음은 상처만 남깁니다. 남이야 손해를 보든 말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화는 불입니다. 뜨거운 불입니다. 그러나 그 불로는 방을 따뜻하게 할 수도 밥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나무를 태울 수도 쇠를 달굴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속만 태울 뿐입니다”(이규경). 잘못된 열심은 영혼에 상처만 남긴다고 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기대로 화를 키워서는 안 되겠습니다.
시리아의 이사악 성인은 “죄인이든 의인이든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회심하는 이들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회심의 노력이나 기간은 죽는 순간까지 항구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한두 번에 끝날 일이 아닙니다. 매일이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의 때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마태10,22).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가 드러날 때 고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백입니다. 회개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아무도 내 죄를 알지 못하고 추궁하지 않는데도 하느님 앞에 부끄러워 고백하는 것입니다.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필리피1,10-11). 하고 권고합니다. 따라서 하루하루가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나무랄 데 없는 축복의 날 되길 희망하며 ‘내가 바라는 하느님’을 기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로 거듭날 수 있는 한 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준비를 갖추고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일까?’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를 생각하며 아기 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회개의 핵심은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회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다시 발견하는 데서 얻어지는 결실입니다. 자비의 하느님! 너그러우신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끊임없는 회개의 원천입니다”(요한바오로2세). “회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내가 그분을 알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고 용서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언제나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삶의 추구로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나치게 세상과 땅만 바라보지 않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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