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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정 마리아 대축일 월요일 복음 : 성모님의 믿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09 조회수49 추천수2 반대(0) 신고

 

 

가톨릭 신앙에서 성모님을 공경하는 건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내용만 가지고 묵상을 한번 하고 싶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처녀인 마리아는 분명 훗날은 성모님으로 공경을 받지만 이 시점에선 예비 성모님이 되실 그런 신분이었지 성모님이라는 신분으로 격상될 그런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내용 요지는 남자를 모르는 순진한 처녀에게 천사가 앞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거라는 사실을 알리는 수태고지를 한 후에 놀라워하자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다는 말씀에 그렇다면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며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오늘 이 내용만 놓고 봤을 때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다양한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믿음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합니다. 믿음이라는 명사는 '믿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긴 하지만 단순히 믿는 마음이라고 하는 뜻이 되긴 하지만 신앙 안에서 믿음은 그런 뜻도 지협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범위를 좀 확대해서 보면 어떤 사실, 팩트를 인정하는 게 아니고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없는 사실일지라도 그 사실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게 믿음이라는 걸 알려주는 듯합니다. 또한 그 사실이 불가능할 것처럼 인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정말 그런지 오늘 복음에 그 정답이 있습니다. 이제는 성모님이라는 신분이 아닌 시골뜨기 순진무구한 처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마리아는 한 생명이 탄생하려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걸 안다고 해서 순수하지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모르는 백치와 같은 처녀였다면 오늘 복음은 이상한 결론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마리아는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그것도 남자를 모르기 때문에( 사실 성경에서는 성경이기 때문에 표현을 극도로 완곡하게 표현해 이렇게 표현하신 것이라는 사실은 다 아실 겁니다) 당연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또 가능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랬던 그녀가 그럼 왜 어떻게 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선회를 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된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가브리엘 천사가 한 말에 어느 정도 힌트가 있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성령의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신앙적으로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복음에 나오는 말씀 행간 속 숨은 의미를 보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이와 함께 천사는 사촌 언니의 임신 사실을 알리는데 그당시 사촌 언니가 임신을 할 수 없다고 할 정도의 불가능이 존재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임신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늙은 나이에"라는 표현에서 사실 천사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임신이 된 걸 보면 물론 여기서 엘리사벳 언니도 임신이 힘든 몸인데 성령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 성경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성령의 힘 여부와 상관없이 단순히 생각해봐도 인간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그런 게 가능한데 더군다나 성령의 힘이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묵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가능하게 해 주실 수 있다고 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부분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마리의 믿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또 하나 알 수 있는 단서가 있습니다. 사실 다른 것 다 떠나서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사실로 인해서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일 수 힘들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서는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앞으로 예수님을 낳고 난 후에 벌어질 일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끔찍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가브리엘 천사를 향해서 두려운 마음에 거부의 뜻을 전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천사의 말에 순명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 안에서 순명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순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성모님의 신앙을 통해서 한번 묵샹해봐야 할 것입니다. 신앙에서 진정한 순명은 이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를 때 그 말씀 그 자체의 뜻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지 그외 다른 인간적인 생각이 들어가면 순명이라는 건 있을 수 없고 또 순명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하는 순명은 진정한 순명이 아니고 순도도 조금은 떨어지는 순명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확한 의미에서는 겉모양은 순명이겠지만 진실한 순명은 아닌 것입니다. 마치 보여주기식 순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모님의 이런 점을 묵상하게 되면 진정한 순명은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듯합니다. 우리 모두 성모님의 이런 신앙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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