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이사35,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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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12-09 | 조회수2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35,1-10)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5~6ㄱ)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5) 본절부터 7절까지는, 종말에 선민 이스라엘의 땅에 넘칠 환희과 기쁨을 예고하는 35장 1-2절에 이어, 다시 하느님께서 가져오실 당신 백성들과 그들의 땅의 역동적 회복을 예언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역동적 구원은 부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에서 성취되었다.
특히 5절과 6절은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후,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되심을 입증하면서 답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마르7,37 ; 루카7,22 ; 마태11,2-6). 즉 이것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문 서두에 제시된 '그때에' 에 해당하는 '아즈'(az ; then)는 일차적으로는 메시아 시대를 나타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것은 주님께서 도래케 하시는, 온전한 회복의 나라,영원한 나라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통해 이루어질 그 나라로 귀결된다.
한편, 하느님께서 회복케 하시는 역사(役事)가 이루어질 날에 일어나게 될 사건으로 먼저 제시되는 것은 맹인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여기서 '열리고'에 해당하는 '티파카흐나'(thiphaqahna)는 '열다'의 의미를 지닌 '파카흐'(phaqah)의 수동형으로서, '열릴 것이다'는 의미가 된다.
이처럼 이 단어가 수동형으로 사용된 것은 그것이 저절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낸것이다. 즉 맹인의 눈이 열리는 역사가 전적으로 주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이것은 문자 그대로 맹인이 눈을 뜨고 보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며, 영적 어두움 속에서 멸망의 길을 걷던 자들이 진리의 빛을 보고,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하느님을 거역하던 백성에게 내려졌던 책벌이 풀리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이사6,10; 29,18). 그들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보게 될 것이며,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더 이상 무익한 이방의 강대국이나 헛된 이방의 우상이 아닌, 완전한 구원이신 주 하느님만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한편, 이어지는 본절 후반부는 '눈먼 이의 눈' 에서 '귀먹은 이의 귀'로 바뀌었을 뿐, 앞 부분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평행 대구 문장으로 풀이된다. 여기서는 청각기관인 '귀'란 표현이 사용되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했던 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 그 귀가 열리고 진리를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 진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떠뜨리리라.' (6ㄱ) 예수님은 벳자타 못 가에서 서른 여덟 해나 누워있던 병자를 치유하셔서 그로 하여금 걷게 하셨으며(요한 5,2-9),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해 그로 하여금 사슴처럼 뛰게 하였다.(사도 3,1-9) 이처럼 메시아 시대가 되면, 절름발이도 건강한 다리를 갖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영적으로 해석하면, 불완전한 신앙을 가졌던 자들이 신앙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고, 죄의 굴레에 얽매여 바르게 사는 데 있어 제한을 받던 자들이, 그 굴레를 떨쳐버림으로 인해, 진리의 길을 마음껏 활보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란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활 중 갈릴리 지방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셔서, 그로 하여금 말을 분명하게 하신 사건(마르코 복음 7,31-37)을 연상케 한다.
이것 역시도 영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과거에는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했던 자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며, 하느님의 진리를 침묵하던 자들이 입을 벌려 담대히 그 진리를 증거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으로 알아 들을 수 있다.
한편, 앞의 5절의 경우는, 메시아의 활동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표현이 모두 수동형으로 사용되어,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가 강조되었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 발로 걷고 입으로 말하는 역사가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는 강조 능동형과 능동형 동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메시아 시대의 회복의 양상이 하느님의 주도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자들의 적극적인 순종과 증거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임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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