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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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12-09 | 조회수157 | 추천수4 | 반대(0) |
본당에서 ‘죽음 교육’이 있었습니다. 죽음 교육의 첫 시간에 김소엽 시인의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오늘은 그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죽음은 마침표가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쉼표, / 남은 자들에겐 끝없는 물음표./ 그리고 의미 하나. 땅 위에 떨어집니다./ 어떻게 사느냐는 따옴표 하나,/ 이제 내게 남겨진 일이란/ 부끄러움 없이 당신을 해후할/ 느낌표만 남았습니다.” 죽음 교육의 목적은 잘 사는 방법을 찾는 거였습니다. 죽음 교육의 목적은 잘 익어가는 거였습니다. 죽음 교육에서 ‘인생의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좋았던 일, 보람 있었던 일, 행복했던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괴로웠던 일, 슬펐던 일, 아쉬웠던 일, 불행했던 시간을 찾아보았습니다.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어우러지는 쌍곡선이라는 말처럼 많은 분이 행복했던 기억, 불행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교적 평탄했던 저의 인생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희망과 절망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그래프에서 안 좋았던 시간은 극복하고, 좋았던 시간은 반복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죽음 교육에서 ‘솔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솔개는 장수하는 새에 속한다고 합니다. 40살 무렵이 되면 솔개는 부리는 커지고, 날개는 무거워지고, 발톱이 무디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솔개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가서 6개월간 인고의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먼저 커진 부리를 바위에다 부딪친다고 합니다. 그러면 부리가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부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로 나온 부리로 무디어진 발톱을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발톱이 나온다고 합니다. 무거워진 날개 깃털을 뽑아 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깃털이 날개를 덮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면 솔개는 새로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음 30년을 힘차게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솔개’처럼 살아야 합니다. 솔개가 부리를 바위에 부딪쳐서 없애 버리듯이 낡은, 우리의 습성을 없애야 합니다. 솔개가 약해진 발톱을 뽑아 버리듯이 나약한 우리의 습성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솔개가 무거워진 깃털을 뽑아 버리듯이 못된 우리의 습성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느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그날이 오면 유배가 끝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이 오면 평등의 세상, 자유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날은 장소의 이동이 아닙니다. 제가 살았던 서울도,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깊다면 서울도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언덕이 높다면 지금 살고 있는 달라스도 그날이 아닙니다. 골짜기가 메워진다면, 언덕이 평평해진다면 어디에 있어도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날이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분명 골짜기가 있습니다. 학력, 지역, 이념, 직업, 계층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너무 깊어서 넘어가기도 힘들고, 넘어오려는 사람의 손을 뿌리치기도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듯이 우리의 삶도 짧은데 우리는 골짜기를 메우기보다는 더 깊게 만들곤 합니다. 이런 골짜기를 메우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산과 언덕이 있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라는 바벨탑이 있습니다. 바벨탑은 교만, 욕심, 허영, 위선, 가식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 탑을 낮추어 평평하게 하는 길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착한 목자 이야길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성공도 실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기쁨과 슬픔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유함과 가난함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행운과 좌절도 있습니다. 그러나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잃어 방황하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기다리십니다. 그러기에 신앙인은 ‘희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다. 보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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