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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12.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0 조회수95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4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간 화요일

예전에는 매주 산에 다녔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등산을 좋아했습니다.

등산하면서 다음에 등반할 산을 생각했고,

등산 갈 생각에 설렘을 갖고

또 한 주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할 일을

소홀히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편안하게 등산에 임하려면 열심히

한 주를 보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냐고 물으면,

저기에 산이 있으니 오르고

그곳에 계속 살 수 없으니

내려온다고 답했습니다.

남들과 다르지만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산에 가는 것을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가고 오는 교통 시간과 등산의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온종일 시간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를 ‘남들도 모두

그렇게 사니까….’라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등산을 멀리했습니다.

결국 지금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만의 좋은 취미가 사라진 것입니다.

남들이 간 길을 그냥 따라가는 삶은

편하고 안전합니다. 그러나 남이

알아주든 말든 진정 독창적인 무엇인가를

잘해 나가는 삶, 이것이야말로

진짜 자기 삶이 되어 기쁨 안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사는 삶이 목표가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 삶이 과연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맞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나처럼 사는 삶, 나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삶이야 말로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작음도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늘 나라의 논리는 이렇게 다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이런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이 뜻을 따를 때만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통해 나의 고유함을 드러낼 수

있는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절대로 하느님으로부터

내침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비록 세상 안에서는 볼품없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의 뜻을 따른

우리를 하느님께서는 더 크게 쓰시고

받아주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지 않는 큰 사람이 아닌,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 작은 사람이 되는데

집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라.

그들이 걸어온 길은 고난과

자기희생의 길이었다.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사람만이

위대해질 수 있는 법이다.

(G.E. 레싱)

사진설명: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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