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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착한 목자 주님 “희망과 기쁨, 위로와 연민,
작성자선우경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0 조회수65 추천수8 반대(0) 신고

2024.12.10.대림 제2주간 화요일                                                      

이사40,1-11 마태18,12-14

 

 

착한 목자 주님

“희망과 기쁨, 위로와 연민, 온유와 겸손”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교회가 시복시성을 위해 노력중인 ‘하느님의 종’, 착한 목자 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묘비명입니다. 믿는 이들 역시 늘 착한 목자 주님을 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예전 수도원 분원장 직을 맡았을 때 “공동체의 장상이기 보다는 형제들을 섬기는 목자로 생각하라.”는 장상의 충고도 잊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은 “되찾은 양의 비유”를 통해 착한목자 주님의 진면목을 보여 주십니다. 여기서 초점은 “길 잃은 양 한 마리”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마리가 있는 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기뻐한다.”

 

길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은 복음에서 하나이지만 실제는 얼마나 많겠는지요! 곳곳에 길을, 희망을, 꿈을, 비전을 잃고 유혹에 빠져 방황하고 죄를 짓고 병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 주님을 생각할 뿐 아니라, 우리 각자 잃은 양이 되지 않기 위해 늘 길이자 희망이신 주님을 찾는 노력도 참으로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더 나아가 참으로 바람직한 삶은 잃은 양을 찾는 착한목자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작은 이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는 착한목자 주님이십니다. 앞서의 복음 내용도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곳곳에 길을 잃은 작은 이들이요 우리 또한 여기에 속할 수도 있겠고 모두가 하느님의 연민의 구원대상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착한목자 주님 중심의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있는 아흡아홉에, 하나 만이 공동체로부터 떠나 방황하는 길잃은 양이 된 것입니다. 새삼 어디에 있던 주님의 공동체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자각이 얼마나 큰 위로와 안도감을 주는지 깨닫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 개념이 아니라 관계 개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와 더불어 형제들과의 관계가 깊고 좋으면 어디나 지상천국의 공동체입니다. 혼자서는 못삽니다. 교황님도 늘 강조하는 것이 “더불어(together)”의 여정입니다. 고립단절의 혼자가 길잃은 양이요 지옥입니다. 공동체 안에 함께 살아도 순전히 고립단절의 삶이라면 길잃은 양이요 지옥같은 삶입니다. 

 

그러니 관계의 욕구는, 공동체 소속의 욕구는, 길이자 희망이신 착한목자 주님을 찾는 욕구는 누구나의 근본적, 생래적 욕구입니다. 착한목자 주님은 늘 이런 길잃는 작은 이들을 마지막 하나까지 찾아 나섭니다. 어찌보면 우리들은 모두 길잃은 작은 이들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이런 길잃은 작은 이들을 불철주야 찾아 나선 착한목자의 사랑에 응답하여 착한목자 주님을 찾는 적극적이고 항구한 응답이 절대적입니다. 

 

대림시기는 바로 우리 모두가 우리를 찾아 오시는 착한목자 주님을 기다릴 뿐 아니라 마중 나가는 시기입니다. 대림시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마디는 “오시는 주님”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이 공동체 안팎의 모든 형제들이 온통 찬미의 기쁨으로 깨어 가슴 활짝 열고 오시는 착한목자 주님을 맞이할 것을 촉구합니다. 

 

“보라, 우리 하느님이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여라.”

“그분이 오신다. 주님 앞에서 환호하여라. 그분은 오시어 누리를 의롭게, 민족들을 진리로 다스리신다.”

 

공동체 안팎의, 길잃은 모든 이들이 분발하여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대림의 공동체에 합류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화답송에 앞서 이사야서도 우리의 참여를 촉구합니다.

“기쁜 소식은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바빌론에서 해방되어 귀환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온처럼, 예루살렘처럼 대림의 주님을 맞이하라 하십니다.

“보라,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모두를 품에 안으시고 우리를 찾아 오시는 대림의 착한목자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명을 받은 이사야는 또 우리에게 세가지 요청을 하십니다. 1.위로와 2.주님을 길을 닦는 것, 3.인간에 대한 연민입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착한목자 주님은 위로의 주님입니다. 길잃은 작은 이들을 물론이고 위로의 구원을 갈망합니다. 정작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것은 충고나 조언보다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아라.”

대림시기, 참으로 내적으로 회개하여 치유되고 정화되고 성화되어 온유하고 겸손하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하라는 것이며 바로 대림시기 우리에게 부여된 과제입니다. 이어 본연의 인간모습을 되찾으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더불어 하느님 중심을 확고히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무지와 무의미, 허무의 심연에 함몰되지 않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 말씀 위에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새삼 은총의 대림시기 하느님 말씀과 하나되는 공부가 얼마나 본질적 필수공부인지 깨닫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구원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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