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늘 살아계신 사랑의 참 하느님 <경천애인敬天愛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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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선우경 | 작성일2024-12-11 | 조회수8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24.12.11.대림 제2주간 수요일
이사40,25-31 마태11,28-30
늘 살아계신 사랑의 참 하느님 <경천애인敬天愛人>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2)
늘 살아계신 사랑의 참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사람이 누구인지, 또 내가 누구인지 아무리 물어도 하느님이 없으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도 하느님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자 생명이요, 진리이자 길이요, 지혜이자 빛입니다. 세상 것 다 알아도 하느님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요, 하느님을 모르면 허무와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면 살아있어도 살아있다 할 수 없습니다. 참나의 탐구와 하느님 탐구는 함께 갑니다.
그러니 평생공부가, 평생사랑이 하느님을 대상으로 합니다 ‘인생은 속도를 겨루는 시합이 아닙니다. 세월을 견디고 비바람을 버텨야 나이테가 쌓이니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다산). 하느님을 찾는 일도 그러합니다. 지금도 늘 거기 그 자리 정주의 불암산을 볼 때 마다 여전히 되뇌는 고백입니다.
“산앞에 서면 당신앞에 서듯 행복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하느님 중심의 삶에 대해 나눴고, 얼마나 많이 하느님과의 삶의 여정과 만남에 대해 말했고, 얼마나 많이 하느님 사랑을 고백했고, 얼마나 많이 하느님 자랑을 해왔는지 모릅니다. 인생광야여정중 “성인이냐 괴물이냐 폐인이냐” 셋중 하나라고, 또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요 잘못 미치면 폐인”이라 참 많이도 강조했습니다. 하여튼 하느님은, 예수님은 저의 전부였습니다. 다음 시편 역시 그대로 저의 고백이었고 참 많이도 제 고백으로 참 많이도 나눴습니다.
‘주님께 아룁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시편18,2)
이밖에도 제가 사랑하는 시편은 끝이없습니다. 세상에 성서의 시편보다 더 아름답고 깊은 시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생명과 빛, 희망 가득한 찬미와 감사 시편들을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다보니 세상 시들에 대한 맛을 잃었습니다. 수도공동생활 42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쳤던 성무일도시 토요일 끝기도시 독서는 제 영혼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너 이스라엘아 듣거라. 우리 주 하느님은 오직 한 분 뿐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너의 자손들에게 거듭거듭 들려 주어라. 집에 있을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항상 말해 주어라.”(신명6,4-7)
작년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이자 광복절부터는 기상하자마자 바친 만세칠창은 살아있는 동안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
절박한 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작금의 국내상황에 네번째, “대한민국, 한반도 만세!”는 더욱 각별하고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는 전국토가 순교성지로 가득한 순교자의 나라 대한민국이 아닙니까? 아마도 이 기도 덕분에 현재의 위기도 전화위복, 잘 수습되리라 믿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드높아지리라 믿습니다. 이어지는 자작 행복기도 역시 2018년 10월 이후 참 많이 나눈 기도문이요 그 일부만 나눕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꽃자리 하느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입니까? 바로 오늘 이사야가 또 예수님이 당대 무겁고 어둔 고난과 시련의 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좌절하는 이들에게 주신 말씀은 오늘의 고난과 시련중인 우리들에게도 무한한 위로와 힘이 됩니다.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끝없는 위로와 격려, 치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이사40,28-31)
우리의 하느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 하느님 말고 이런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하느님 더하기(+) 나는 전부임을, 생명과 빛으로 충만한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반대로 이런 나에서 하느님을 빼버리면(-) 제로의 죽음과 어둠의 허무와 무지의 인생자체일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이어 은총의 대림시기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가 고맙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종파를 초월하여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모든 인류에게 활짝 열려 있는 구원의 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 정주처, 피난처, 쉼터, 배움터, 샘터는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가면서 우리의 불편한 멍에, 무거운 짐은 점차 주님의 편한 멍에로, 가벼운 짐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주님의 미사은총입니다.
“주님은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시편103,8).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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