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 제2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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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4-12-12 | 조회수4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오늘 복음은 사실 어려운 부분입니다. 짧은 부분이지만 실제 이 내용은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에 의미의 공극이 큽니다. 예전에 언제 제가 오늘 복음을 개신교 성경을 인용해서 한번 설명을 드린 적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려고 다양한 영어성경과 주석을 봐도 명쾌한 설명이 잘 없습니다. 최대한 오늘 복음을 제 나름대로 자료를 찾은 걸 바탕으로 해서 묵상을 한번 공유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복음의 큰 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여자에게서 난 사람 중에서 가장 큰 인물이라고 하시면서 그런 세례자 요한도 지상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한다고 해도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보잘것없는 미소한 사람도 세례자 요한보다는 더 낫다는 말입니다. 그다음 이어지는 표현으로는 하늘나라는 폭행으로 시달릴 상황에 놓여있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성경 번역이 틀렸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뉘앙스가 원문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어성경 몇 권을 비교해 봐도 조금은 달리 표현하고 싶습니다. 딱 이 부분만 놓고 봤을 때는 개신교가 좀 더 잘 번역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전에는 그 근거를 제 언어적인 감각으로 봤을 때 이렇게 추론을 했는데 지금은 다양한 주석을 보고 추론을 하면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사실 천주교 자료에서도 명확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고 표현을 해 놓았습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전반적으로 이해를 해야 오늘 복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자적인 의미만 보면 이해가 조금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하늘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이 세상에 아무리 권세를 가지고 있고 한마디로 큰 소리칠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좀 더 강조하면 지상에서 최고로 뛰어난 사람이라도 하늘나라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과 비교하면 그 보잘것없는 사람이 더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용두사미의 반대 의미입니다.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하늘나라가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럼 더 좋다면 그곳을 가려고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고 생각일 겁니다. 그냥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만 보면 흔히 우리가 사용하는 구원의 의미를 보통 인용할 때 은총과 자비로 얻어진다고 하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물론 그 내용도 성경에 언급돼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씀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지만 전적으로 그렇게만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오늘 복음이 또 보여줍니다. 제가 이 앞에 묵상글에서도 표현을 했지만 마치 이런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함께 정의와 공정도 생각해야 한다는 게 바로 이 말 뜻입니다. 우리 성경은 폭력을 사용해 하늘나라를 빼앗는다고 했는데 이 말을 좀 달리 의역해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하늘나라는 그저 그냥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뜻입니다. 아주 쉽게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적인 공로로 들어간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강조하는 것은 “그냥 공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나마 좀 더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병행 본문을 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 16장 16절입니다. 루카복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려고 힘을 쓴다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표현한 폭력은 이런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예전에 ‘침노’로 표현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제가 천주교로 개종 후 보니 그 침노가 바로 루카복음 16장 16절 병행 본문을 보면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침범은 원래 평화적인 게 아니고 부정적인 뉘앙스인데 당연히 우리도 폭력이라는 물리적 수단이 동원돼 하늘나라에 간다고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면 오늘 복음이 좀 더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달리 말하면 침범을 해서라도 하늘나라는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인 평화적인 방법으로 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말에는 역설적인 뜻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이젠 이 의미가 완전히 이해될 것입니다.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천국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천국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면 오늘 복음이 조금은 어렴풋하지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묵상이지 이게 맞다고는 할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만 더 부연하자면 오늘 복음에는 이런 숨은 뜻도 있을 겁니다. 세례자 요한을 이 세상의 상징적인 큰 인물로 표현해 비교한 의미를 생각해보면 이 세상 권세, 권력, 지위 이 따위는 그냥 들에 핀 꽃처럼 나중에는 시들어버리게 될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매이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늘나라에 가는 방법을 알아서 그곳에 갈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해야 한다는 문맥적인 의미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최종 한 마디로 오늘 복음을 표현하면 하늘나라 가는 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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