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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회개’는 ‘구원의 은총’에 대한 ‘응답’입니다.>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12-12 조회수45 추천수3 반대(0) 신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1-15).”

 

 

 

1) 여기서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이 바로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말라키서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말라 3,23-24).”

 

가브리엘 천사는 세례자 요한의 출생을 예고할 때,

 

말라키서의 예언을 인용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3-17).”

 

엘리야 예언자가 메시아보다 먼저 와서 하는 일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일”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한 것은, 사람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 일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당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다.’ 라고 강조하신 것으로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 메시아의 구원을 잘 받으려면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대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회개하여라.”가

 

예수님 말씀의 진짜 뜻입니다.

 

그렇지만 회개를,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나 대가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시는 ‘자비’입니다.

 

<원래 ‘자비’는 어떤 조건도 없이,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회개’는 그 자비에 대한 ‘응답’입니다.

 

‘혼인잔치의 비유’가 그것을 잘 나타냅니다.

 

그 비유를 보면, 임금은 잔칫상을 차려 놓고서

 

사람들을 부릅니다(마태 22,2-4).

 

초대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참석해서

 

이미 차려져 있는 음식을 먹기만 하면 됩니다.

 

음식 값이나 입장료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예물을 가지고 가서 바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이미 차려져 있는 잔칫상에 앉아서 잔치 음식을 먹는 것.

 

그렇기 때문에 ‘회개’와 ‘용서’도

 

‘구원’이라는 큰 은총에 포함되어 있는 은총입니다.

 

<잔치에 참석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거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거부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합니다.>

 

 

 

3) 회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이미 주신 구원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곧 스스로 심판과 멸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7-20).”

 

‘살길’을 알려 주고 그 길로 인도해도, 그것을 거부하고

 

‘죽을 길’로만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런 사람은 구원하시지 못합니다.

 

권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서

 

강제로 구원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상황도 비슷합니다.

 

시민들은 ‘살길’을 알려주면서 그 길로 함께 가자고

 

호소하는데, 어리석은 정치인들은 ‘죽을 길’로만

 

가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회개’는 ‘살길’을 선택하는 지혜이고, 회개를 거부하는 것은

 

‘죽을 길’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고집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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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림 제2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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