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신앙생활 자체가 끊임없이 회개하는 생활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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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12-13 | 조회수3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신앙생활 자체가 끊임없이 회개하는 생활입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6-19).”
1) 여기서 ‘이 세대’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이 세대’ 사람들을
‘장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로 비유하셨을까?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뜻을
외면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같다.”는 “철없는 아이들과 같다.”입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는
세례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는데도 듣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 자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2)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는 세례자
요한의 엄격한 극기고행의 생활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는 “저자는 미쳤다.
정상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한 자들은, “우리가 회개 선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세례자 요한이 미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만나시는 것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는,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니 예수는 죄인이다.”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자들은, “예수는
죄인이니까 그의 말은 듣지 않겠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이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옳다는 것은”이라는 뜻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생활 방식이나 예수님의 활동 방식은 모두
‘인간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고, 그것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라는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구원받음으로써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는 뜻입니다.
3) 사실 세례자 요한의 회개 선포와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보면, 표현이 똑같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4,17).”
표현은 같은데, 요한의 선포는 회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예수님의 선포는 하늘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어떻든 요한의 선포와 예수님의 선포를 거부한 자들은,
‘복음을 믿기를 거부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한 자들’입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살던 대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들이고, 그렇게 거부하는 자들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자들, 즉 스스로 심판과 멸망을 선택한 자들입니다.
4) 신앙인들은 회개 선포와 복음 선포를 이미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회개와 신앙생활은 한 번 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꾸준히, 그리고 끝까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끝까지’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입니다.
만일에 이미 신앙인이 되었다는 생각만 하고서
자만하고 방심한다면, 위험한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2,43-45).”
5) 베드로 사도도 이렇게 경고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이 세상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그 사람들이 그것에 다시
말려들어 굴복을 당하게 되면, 그들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집니다. 의로움의 길을 알고서도 자기들이 받은 거룩한
계명을 저버린다면, 차라리 그 길을 알지 못하였던 편이
나을 것입니다. ‘개는 자기가 게운 데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는
속담이 그들에게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2베드 2,20-22).”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는 말은, 똑같은 죄를 지어도
신앙인이 더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똑같은 벌을 받아도 신앙인이 더 비참한 상태가
될 것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은총 안에서’ 잠깐이라도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 행복과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은총 밖으로’ 쫓겨났을 때,
은총 안에서의 행복과 기쁨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
더 비참한 심정이 될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나라 밖으로 쫓겨났을 때
더 비참하고 더 고통스럽게 된다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대림 제2주간 금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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